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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부터 경고했는데도 인구 소멸로 치닫는 한국[광화문에서/박희창]

입력 | 2024-03-03 23:42:00

박희창 경제부 차장


‘우리나라 인구가 앞으로 30년 후쯤부터는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1988년 11월 12일 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기사의 첫 문장이다. ‘작년 합계출산율 1.7명’이라는 작은 제목이 함께 달려 있다. 글은 이시백 당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말로 마무리된다. “가족계획 사업이 성공한 때문이라고 본다. 앞으로 인구정책과 이와 관련한 모든 정책 계획이 대폭 수정돼야 하게 됐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가 거리에 넘쳐나던 1980년대에 나온 지적이다.

전망은 32년 만에 현실이 됐다. 태어난 아기보다 사망자가 처음으로 더 많았던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3만6300명이 자연감소했다. 경기 하남시나 서울 광진구에 사는 사람 수만큼이 4년 새 사라졌다. 합계출산율은 1.7명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 4분기(10∼12월)만 보면 0.65명이었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이 2.1명인 걸 감안하면 우리가 ‘인구 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계획이 성공하며 1980년에 2.82명이었던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졌을 때부터 우린 출산율 하락이 가져올 문제들을 알았다. 당시 선진국들은 이미 낮은 출산율로 인한 인구 감소, 노인 인구 증가,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들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과잉인구를 실감하고 있는 마당에선 출산율을 더욱 낮추어 인구 증가를 막는 것이 소망스러운 것 같으나 인구 문제는 식량과 실업면에서만 볼 수 없는 새로운 성격의 문제도 있다는 것을 선진국의 예는 가르쳐 주고 있다.’ 1981년 12월 7일 사설의 일부분이다.

‘오픈북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던 저출산 대응에 실패했다는 건 일-가정 양립 문제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내 첫 여성 변호사였던 고 이태영 박사는 1981년 진행했던 대담에서 “우리나라 1864만여 명의 여성 인구 중 525만 명이 취업 인구로 전체의 28%나 된다. 이 직업 여성은 더욱 늘어갈 추세인데 여성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시켜야 하는 문제 등 너무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부문이 많다”고 했다. 여성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문제는 여성 인구 중 취업자 비중이 2배 가까이로 늘어난 지금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가팔라지는 ‘출산 절벽’에 미혼, 독신 가구에 ‘싱글세(稅)’를 걷어야 한다는 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77년 9월 19일 자 ‘해외토픽’ 코너에 ‘자녀 없을 땐 벌금을’이란 제목의 짧은 기사가 실렸다.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영국이 2000년경에는 아기 없는 부부들에게 벌금형을 가해야 할 것이라는 영국 교수의 전망을 전하고 있다. 그때의 해외토픽감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내용이 됐다.

그간 지면에 실렸던 기사들을 다시 짚어 보니 30여 년 전부터 예고됐던 어두운 미래가 고스란히 현재가 됐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30년 후쯤에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쟁도, 재난도 아닌 인구 감소로 소멸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도 언젠가 현실이 됐다며 인용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