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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방산 기업이 수학 교육을 걱정하는 까닭 [특파원칼럼/조은아]

입력 | 2024-02-29 23:42:00

‘무기 생산 속도전’ 나섰지만 “엔지니어 부족”
전쟁 대비 논의가 기초학문 강화 논의로 확대



조은아 파리 특파원


요즘 유럽 국가 수장들이 군부대나 군수 공장을 찾는 장면이 유독 자주 보도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전쟁 위협이 높아진 데다, 올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되면 유럽 안보의 핵심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연대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토나 미국에 기대지 않고 자국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유럽 국가들의 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시사하는 거친 발언으로 러시아는 물론이고 서방 국가들을 발칵 뒤집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올 1월 프랑스 북서부 셰르부르 해군기지를 방문해 군인들에게 신년 연설을 하며 “러시아의 승리는 유럽 안보의 종말”이라며 “우리는 수년에 걸쳐 늘어지고 있는 군수품 생산 기한에 다시는 만족해선 안 된다”고 군수품 생산 ‘속도전’을 선언했다. 군수 기업들에 아예 전시처럼 생산해 달라고 주문했다.

2월 유럽 자강 안보의 현장을 확인하고자 프랑스 방산기업 탈레스의 군수 공장을 찾았을 때도 생산 속도를 높이려는 긴박감이 가득했다. 국내외에서 밀려드는 주문에 생산 부품들을 미리 공장에 쌓아두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기업은 이례적으로 늘어난 주문 물량에 쾌재를 부를 듯한데 오히려 수심이 깊은 분위기였다. 급증한 수요에 맞춰 군수품 생산을 서두르고 싶어도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임원은 “전문 인력 부족이 앞으로 최대의 난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방산 기업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라팔 전투기를 제작한 프랑스 다소는 2년 연속 채용을 늘리려 했지만, 용접공과 금속 세공인 등 숙련 전문가가 부족해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 자주포를 생산하는 넥스터도 지난해 5월 프랑스 의회에서 용접, 사이버 분야 전문가가 부족하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방산 기술자가 부족한 건 워낙 학령인구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 게다가 유럽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평화 시대가 워낙 길었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 대비에 둔감해지며 방산 투자를 미뤄 온 것이다.

인력 부족 문제가 워낙 고질적이다 보니 인력 양성을 위한 기업들의 제안은 근본적이다. 기업들은 수학과 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일찍이 기초학문의 지반을 탄탄히 다져 학생들의 공학 실력을 키우고, 학생들이 공학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 달라는 요청이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의 나라답지 않게 프랑스는 최근 기초과학 강국의 명성이 퇴색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81개국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자국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전례 없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한 문제 풀이 중심의 교과서를 흥미를 유도하도록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부터 교사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논의가 나오고 있다.

최근 의사 증원을 놓고 갈등을 빚는 한국엔 프랑스의 이공계 인력 양성 열기가 먼 나라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이공계 예비 인력까지 의대로 향하는 ‘의대 블랙홀’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로선 당장 불거진 의료 위기 해결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 등 기초과학 육성은 고급 엔지니어 양성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정부와 의료계가 하루빨리 소모적 논쟁을 건설적으로 마무리하고 근본적인 영역으로 논의의 중심을 옮겨 가길 바란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