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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합쳐 ‘육아휴직 480일’ 의무화… “비혼 커플도 신청 가능”

입력 | 2024-01-20 01:40:00

[출산율, 다시 '1.0대'로]
출산율 반등 이룬 나라들〈5·끝〉 육아휴직 ‘아빠할당제’ 스웨덴
男, 무조건 육아휴직 최소 90일 써야
年37만명 휴직… 인구대비 韓의 35배
휴직중 390일은 급여 78% 보전… 시간제 근무해도 승진 등 차별 없어




8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만난 테오도르 훌트베리 씨(35)와 여자친구 리타 알톤 씨(34), 딸 루스 양(2). 법적으로 비혼 상태인 훌트베리 씨는 지난해 6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여자친구 대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스톡홀름=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부모 육아휴직 최초 도입한 스웨덴


1974년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부모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부모가 자녀 1명당 육아휴직을 최대 48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이 중 90일은 남성만 사용할 수 있다. 스웨덴 인구는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7배에 달한다. 육아휴직 기간엔 급여의 78%를 받는다. ‘복지국가’ 스웨덴이 저출산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현지에서 살펴봤다.》
“아이를 키우니 집이 좀 지저분해도 이해해 주세요.”

8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다가구주택. 다큐멘터리 제작자 테오도르 훌트베리 씨(35)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기자를 맞았다. 또 앉을 자리를 안내하며 거실에 널린 장난감을 급하게 치웠다.

그는 10년째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디자이너인 여자친구는 2022년 7월 딸을 낳았고 출산휴가를 마친 후 지난해 6월 직장에 복귀했다. 법적으로 비혼 상태인 훌트베리 씨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지난해 6월부터 여자친구 대신 아이를 키우고 있다.

훌트베리 씨는 “육아휴직을 쓰고 집에서 딸을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과연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며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저절로 기저귀를 확인하고 식사를 준비한다. 딸과의 유대감도 커졌다”고 말했다.

훌트베리 씨처럼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라테 파파(latte papa)’라고 부른다. ‘한 손에는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미는 아빠’를 뜻하는데 스웨덴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 아빠도 ‘최소 90일’ 육아휴직 사용

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부모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하고 남녀 모두 6개월씩 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은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 경력을 관리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게 육아휴직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남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성 육아휴직이 활발해진 건 스웨덴이 1995년 ‘아빠할당제(파파쿼터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이 제도는 부부 합산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기간을 정하되 이 중 일정 기간은 특정 성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처음에는 육아휴직은 여성만 사용한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남성이 적어도 1개월은 육아휴직을 쓰도록 했다. 박은정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육아휴직을 도입하는 것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별개”라며 “스웨덴은 1980년대에 이미 육아에서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부 보고서가 나왔고 위원회도 만들어 논의를 진행했다. 그런 바탕에서 파파쿼터제를 도입하면서 ‘최소 한 달은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자’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정착되면서 조금씩 할당 기간을 늘렸다. 지금은 부모가 자녀 1명당 육아휴직을 최대 480일까지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중 남성이 반드시 최소 90일을 사용해야 한다.

스웨덴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2022년 기준으로 37만5000여 명으로 한국(5만4000여 명)의 7배에 달한다. 한국 인구가 스웨덴의 5배라는 걸 감안하면 인구당 육아휴직 남성 수는 35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 육아휴직 때 급여 78% 보전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을 높이는 것에는 육아휴직 급여 수준도 중요하다. 소득이 크게 줄지 않아야 휴직을 망설임 없이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육아휴직 기간 480일 중 390일에 대해 정부가 육아휴직 급여로 기존 급여의 77.6%를 준다. 이후 90일 동안은 하루 약 180크로나(약 2만3000원)의 급여가 지급된다. 스웨덴 회사 중에는 자체적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주는 곳도 적지 않다. 미디어기업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닐스 불프 씨(35)의 경우 정부가 ‘통합사회보험기금’에서 지원한 금액 외에도 회사에서 사규에 따라 10%를 추가로 지급했다. 불프 씨는 “스웨덴 구직자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기업들의 육아휴직 보전금 액수”라며 “저는 급여의 90%를 보전받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거의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또 스웨덴의 경우 구직자나 자영업자, 학생 등에게도 일정 기준에 따라 육아휴직 급여를 주고 있다.

반면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 소득보전 비율은 2022년 기준으로 44.6%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육아휴직 소득보전 제도를 운영하는 27개국 중 17번째로 하위권이었다. 육아휴직 활성화를 통해 스웨덴은 합계출산율을 1999년 1.50명에서 2010년 1.98명까지 올렸다. 최근 다소 하락해 2022년의 경우 1.52명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한국(0.78명)의 2배가량이다.

● 여성 인력 적극 활용하는 ‘시간제 일자리’
스웨덴의 경우 육아휴직을 하는 남성들이 많은 만큼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체인력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쉽게 대체인력을 뽑을 수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도 육아휴직이 큰 문제가 아니다. 훌트베리 씨는 “장기간 자리를 비우더라도 원 직장에 복귀할 때 아무 문제가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스웨덴은 일-가정 양립을 원하는 기혼 여성들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도 활성화했다. 시간제 일자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지만 승진과 보상, 임금, 연금, 휴가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정규직의 경우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전일제 근무로 바꿀 수 있다. 스웨덴 SE은행은 직원의 약 14%가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

니클라스 뢰프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재정실 대변인은 “시간제 일자리 등 대체인력 시장도 활발한 편이고 고용 환경도 유연해 기업도 육아휴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