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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폐광촌 빈민과 난민들, ‘원망’서 ‘연대’로

입력 | 2024-01-08 03:00:00

88세 켄 로치 감독 ‘나의 올드 오크’
“이 영화가 나의 마지막 작품 될 것”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서 TJ(데이브 터너)가 펍 뒤 공간을 고쳐 시리아 난민과 동네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영국 북동부 더럼의 폐광촌 마을. 한때는 광부들과 그 가족들로 생기가 넘쳤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낡고, 닳고, 삐걱거린다. TJ(데이브 터너)의 오래된 펍 ‘올드 오크’는 빛을 잃은 폐광촌 모습 그 자체다. 떨어져 덜렁거리는 간판 글씨는 대걸레 자루로 매번 올려 끼워야 하고,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치르며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던 가게 안 응접실은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근근이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요했던 폐광촌이 들끓는다. 시리아 난민 야라(에블라 마리)의 가족들이 정부 도움을 받아 마을에 정착하러 온 것. 이들은 난민이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집과 음식을 제공받는다. 아이들은 “왜 저 사람들만 줘요?”라고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어른들은 “평생을 산 마을을 저 사람들이 빼앗아 갈 것”이라며 분노한다.

불평등과 노동계급의 현실, 사회문제에 평생 천착한 영국 노감독 켄 로치의 신작 ‘나의 올드 오크’가 17일 개봉한다. 영화는 지난해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올해 88세인 로치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 ‘미안해요, 리키’(2019년)에 이은 로치 감독의 ‘영국 북동부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로치 감독은 제철소, 탄광 등이 쇠락하며 함께 무너진 영국 북동부 마을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만들어 왔다.

영화는 로치 감독의 작품답게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을 주민들과 시리아 난민들은 약자끼리 서로 원망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함께 밥을 지어 나눠 먹으며 연대를 향해 나아간다. 시리아 소녀 야라와 TJ를 통해 다른 인종, 다른 세대, 다른 세계 사이의 우정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단순한 로치 감독의 화법을 선호하지 않는 관객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칸영화제에 15번 초청되고,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들어 올린 거장의 마지막 작품을 감상한다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을 것 같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