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군사쿠데타 당시 국방부 헌병으로 반란군에 맞서다 전사한 고(故) 정선엽 병장과 서울국립현충원에 있는 고인의 묘. ⓒ 뉴스1 DB
12·12군사 쿠데타 당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사수하라’는 명령에 충실하다가 신군부측이 쏜 4발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 고(故) 정선엽 병장(사망 당시 23세)의 44번째 기일이 지난 13일 지나갔다.
고인은 1000만 관객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속에선 조인범 병장으로 나왔다.
조선대 전기공학과 2학년 때 입대한 고 정선엽 병장은 제대후 복학, 대학을 마친 뒤 동생 뒤바라지를 하던 형의 권유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디.
5남매 중 3째이자 장남인 정 목사는 “저는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며 “정확하게 사건이 일어나기 1주일 전 저한테 전화를 걸어 온 동생에게 제가 ‘남은 3개월 군 복무 마치고 조선대학교 졸업하면 내가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동생이 ‘형님 고맙다’고 하더라”고 했다.
정 목사는 “그 약속 대화가 동생과 마지막 대화였다”며 애통해 했다.
동생 사망소식을 듣게 된 경위에 대해 정 목사는 “당시 서울역 앞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며 “출근길에 삼각지를 지나갈 때 택시 기사님이 ‘간밤에 육군본부 국방부 부근에 총격전이 심하게 일어났다’고 해 동생이 국방부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가서 면회 신청을 했었다”고 했다.
이어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면회가 안 된다’고 해 사무실로 돌아와 근무하고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국방부에서 ‘국군통합병원 영안실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희 가족에겐 전두환이 원수다”며 “어머니는 사건 이후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고, 일찍 치매가 와 힘들게 사시다가 떠나셨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현재 사역을 위해 미얀마에 머물고 있는 정 목사는 “조선대가 동생에게 명예 졸업장 수여, 조선대학교 내 서울의 봄 촬영지에 정선엽 병장 조형물도 세워주겠다며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모교인 조선대학교가 정선엽 병장 전사를 명예로운 사건으로 인정한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정 목사는 “정말 저희 가족들에게는 많은 위로가 된다. 조선대학교에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