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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보신각 종지기 후손 “180년 가업 잇게 해달라”… 서울시 “공공 문화재 관리, 세습하기 어렵다”

입력 | 2023-12-06 03:00:00

市, 해당 자리 다른 공무원 채용
타종 전수받은 후손 “계속 도전”



2020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3·1절 기념타종에서 5대 종지기 신철민 씨가 타종하고 있다. 신철민 씨 제공


서울 종로구 보신각 종지기직을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후손이 “180여 년 전부터 해온 가업을 잇게 해달라”고 나섰다. 하지만 서울시는 “보신각은 공공 문화재인 만큼 특정 가문이 관리를 세습하긴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이달 31일 제야의 종 타종 행사도 종지기 가문의 관여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보신각 종지기의 역사는 1840년대 종지기를 맡은 고 조재복 씨(1대)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당시 보신각 누각에 불이 나 종로구 관철동 토박이였던 조 씨가 집 안뜰에 보신각종을 보관하면서 종지기를 맡게 됐다는 것이다. 종지기는 보신각종을 청소하고 관리하며 타종 행사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조씨 가문에서 보신각종은 ‘종님’으로 불렸다. 3대 종지기였던 고 조한이 씨는 영친왕의 호위군관 출신으로 6·25전쟁 때도 피란 가지 않고 종을 지키다 부인이 한 손을 잃었다. 문제는 4대 종지기를 맡았던 고 조진호 씨가 일흔 넘은 나이에 암으로 2006년 세상을 뜨면서 생겼다. 집안 사정으로 대를 이을 수 없게 되자 제자 격이던 신철민 씨(48)에게 종지기 역할을 이어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신 씨는 서울시에 임기제 공무원으로 임용돼 5대 종지기가 됐다.

그런데 지난해 조진호 씨의 손자인 재원 씨(27)가 “가업을 잇겠다”고 손을 들었고, 문화재 관련 실무 경력 1년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요건을 채우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타종을 관리하는 서울시 외주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난해 3·1절 타종에도 참여하며 신 씨로부터 타종법을 전수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무렵 서울시 안팎에선 “공개 채용으로 임용해야 하는 공무원 자리를 특정 가문에 맡기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신 씨가 “조 씨에게 물려주겠다”면서 물러난 자리에는 조씨 가문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채용됐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외주업체 일을 그만둔 조재원 씨는 다른 업체에서 ‘실무 경력 1년’ 요건을 채운 뒤 다시 종지기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당 자리가 다른 공무원으로 채워진 다음이라 언제 종지기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 씨는 “집안에서 보신각종을 관리하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라 언제가 되든 종지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문화재정책과 문화재관리요원이 종지기를 맡고 있는데 해당 직위는 지방공무원법상 공개 채용해야 하는 자리”라며 “한 가문에서 보신각 타종과 관리를 이어간다고 하면 독점 세습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