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년간 쿠바 정부의 스파이로 활동하다 최근 발각된 빅터 마누엘 로차 전 주볼리비아 미국 대사. 미 법무부는 로차 전 대사가 쿠바 정보기관 요원으로 위장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에게 자신이 했던 스파이 활동에 대해 “그랜드슬램 이상”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4일 공개했다. 미 법무부 제공
쿠바 스파이가 백악관 한복판까지 침투했다는 점이 드러나자 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메릭 갤런드 법무장관은 “외국 정보 요원이 미 정부의 가장 고위직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침투한 사례”라고 우려했다.
미 법무부는 로차 전 대사를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1950년 남미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고 1978년 시민권을 획득했다. 예일, 하버드 등 미 명문대 학위를 바탕으로 1981년 11월 국무부에 입부해 2002년 8월까지 일했다. 주볼리비아 미국대사를 끝으로 퇴직했고 2006~2012년 쿠바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 고문도 맡았다.
은퇴 후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거주하던 로차 전 대사는 지난해 자신을 수상쩍게 여긴 미 연방수사국(FBI)의 비밀 수사관이 DGI 요원으로 위장해 접근하자 덜미를 잡혔다. 그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이 FBI 수사관을 DGI의 마이애미 주재 요원으로 믿고 “40년 가까이 쿠바를 위해 간첩으로 일했다”고 실토했다. 이 수사관은 로차 전 대사를 만날 때 로차 전 대사가 DGI에서 교육 받은 대로 우회로를 이용하고 중간에 멈춰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등 완전히 쿠바 요원인 양 행세했다.
FBI 수사관이 로차 전 대사에게 국무부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묻자 그는 “긴 과정이었고 쉽지 않았지만 본부(DGI)가 함께 했다”고 답했다. 국무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쿠바에 포섭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