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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인사 하는 거 보니 尹 정말 달라졌다”는 말 나오게 해야

입력 | 2023-11-09 23:51:00

총선 출마로 곧 수석·장관 대거 빈자리
尹대통령, 약점이었던 인사스타일 쇄신 기회
편한 관료출신 의존 말고 쓴소리 서슴없을
기업 등 민간과 온건진보 인재 적극 영입해야



이기홍 대기자


강서구 보선 패배 후 한 달, 반성과 민생을 화두로 한 윤석열 대통령의 변신 행보가 이어지면서 지지율도 다소 회복세다. 제3지대와 신당 등 이합집산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측근 내리꽂기 공천 같은 ‘자폭성 대형 사고(事故)’ 없이 무난한 공천을 할 경우 내년 4월 총선 판세는 어떻게 될까.

선거 전문가들은 비례대표를 합쳐 국힘 100~120석, 민주당 130~140석, 제3지대와 신당 등이 30석 안팎을 차지할 가능성을 점친다. 민주당이 원내 1당이지만 과반이 안되고, 제3지대가 반(反) 민주당 성향이 강하므로 독주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으로선 그나마 선방으로 여겨야할 것이라는 해석이 덧붙여진다.

물론 보수진영 유권자들은 이런 전망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라 재정을 거덜 내고 온갖 부도덕과 위선으로 점철된 문재인 5년을 보냈고, 현재의 민주당은 DJ 노무현 시절과 비교도 안되는 최하 수준인데 어떻게 계속 1당이 될 수 있다는 건가….”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선거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국민(특히 중도성향 무당파)은 좌파의 부도덕과 부당한 점을 다 알고 분노하지만 그 대안으로 택한 우파 정권 역시 처가 문제, 인사 논란 등으로 실망시키는 바람에 분노의 경감 효과가 발생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비교 자체가 안될만큼 ‘죄질’이 다르지만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수준의, 정의와 공정함의 회복을 기대했는데 그런 기대가 깨지면서 비교우위가 무의미해졌다는 것.

둘째, 수도권 등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 유권자의 단결력이 타 지역 출신 보다 훨씬 강하다.

셋째, 임기 중반 총선은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데 지금처럼 경제가 안 좋을 경우 실제 책임소재가 전임 정권이든 세계상황이든 관계없이 집권당의 무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진영의 조직력과 이권 네트워크가 워낙 방대하고 견고하다.

다섯째, 문 정권 5년간 상당수 국민이 알게 모르게 포퓰리즘에 입맛이 들어버렸다.

보수에겐 암울한 진단이지만 이게 우리 수준이고 현실이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다. 지난 총선을 뒤덮은 코로나 같은 대형 산사태가 아니어도 판세를 바꿀 변수는 숱하게 잠재해 있다. 누가 더 절박하게 뛰고, 더 외연을 확장하느냐에 따라 수십 석이 바뀐다.

이재명 민주당으로선 대승의 첩경이 선명히 보인다. 비명을 완전히 포용하고, 특권 포기에 앞장서며 실용주의 노선에 집중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당이 텃밭에 검사와 대통령 측근들을 대거 꽂아주면 과반수 차지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불리한 판세를 극복할 첩경도 보인다. 반성·겸손 모드를 더 진정성 있게 이어가는 동시에 인사 스타일을 확 바꾸는 것이다.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는 양대 이유는 오만·불통 이미지와 인사 논란이었는데, 이미지는 바꾸려 노력 중이고 인사 스타일도 바꿀 기회가 자연스레 다가오고 있다.

총선 출마로 수석 6자리 중 5자리의 개편 요인이 있으며, 내각도 기재부 국토부 보훈부 장관 등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석열 인사’를 비판할 때 흔히 검찰 출신 중용을 비난하지만, 실제로 가장 큰 문제는 편한 사람 위주의 인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료 출신이 대거 중용됐다. 그 결과 대통령실에서 쓴소리가 사라지고 정무 기능도 거의 마비됐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정치 경험 부족을 보완해주고, 정권과 나라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정치적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경제관료 출신 실장에게선 기대하기 어려웠다.

김대기 실장이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어 민심을 파악하고 가감 없이 전달했다면 지지율 30%대라는 참담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김 실장이 정권 성공과 총선 승리를 위한 그랜드 전략, 실행력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무수석이라도 여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중량급 있는 인물이 맡아 대통령을 대리해 밤에는 야당 중진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낮에는 여당 의원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교류했어야 하는데 이진복 수석은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였다는 평가가 많다.

내각의 인선 풀도 넓어져야 한다. 1년 반을 돌아보면 누가 성과를 냈는지 보인다. 국토 법무 외교 보훈부 등 그나마 두드러졌던 장관들은 다들 성취에 대한 욕심이 크면서도 정치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다.

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하고 기업 등 민간 부문 곳곳에 뛰어난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 온건 진보·중도성향의 야권 정치인과 인재들도 적극 발탁해야 한다. 링컨의 포용적 리더십처럼 ‘팀 오브 라이벌(Team of Rivals)’을 꾸리는 것이다.

정권 출범 당시의 측근중용은 정당 밖에서 입성한 신흥 권력그룹의 한계 때문인 면도 있었다. 여권 인력 풀에서 믿고 쓸 사람을 쉽게 찾지 못하다보니 충성심과 업무능력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에 의존하다 쏠림 비난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고도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니 지나친 자신감에 빠졌다.

사실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의 당선도, 서울시장 보선에서 오세훈의 압승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힘의 승리도, 개별 정치인의 매력이 낳은 산물이 전혀 아니었다. 연이은 승리들은 좌파정권 종식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열망이 낳은 것이었고 정치인들은 운좋게 그 열망의 파도에 올라탄 서퍼(surfer)에 불과했다.

YS DJ처럼 오랜 세월 몸 바쳐 쌓아온 자기만의 정치 자본이 없으면서도 자신이 파도를 몰고 온 주역이라고 착각하면 곧 정치 예금통장이 마이너스가 된다. 다행히 윤 대통령은 올바른 변신 모드로 접어들었는데 그 변신 프로젝트는 인사 혁신 없이는 완성되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는 속으로 아무리 싫어도 비명을 끌어안고 가려 할 것이다. 총선 승리에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국힘은 그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누가 더 절박하느냐에 승패가, 나라의 미래가 달렸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