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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1999년생… “K그림책도 좋아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입력 | 2023-11-04 01:40:00

한국어 학습 교재로 어떨까
우리 문학 알릴 마중물 될지도
◇두더지의 고민/김상근 글, 그림/48쪽·1만3200원·사계절(4세 이상)




“한국어요? 유튜브에서 K팝 음악을 듣고,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배웠어요.”

1일(현지 시간) 제42회 ‘샤르자 국제도서전’이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 엑스포센터. 1999년생 샤르자 출신 여성 프리랜서 통역가인 웨즈 단 씨는 검은색 히잡을 매만지며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했고 정규 교육 과정에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이호재 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UAE에 있는 한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한국어를 익혔다”고 했다.

그가 도서전에 온 건 이날 저녁 도서전에서 열린 김상근 그림책 작가의 강연을 통역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실 UAE에 한국 책이 많이 번역되진 않아서 그림책은 처음 읽어봤다. 그림책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UAE 독자들도 재밌어할 것 같다”며 김 작가의 ‘두더지의 고민’을 가리켰다.

‘두더지의 고민’은 친구가 없어 고민인 귀여운 두더지가 주인공인 그림책이다. 어느 날 홀로 놀던 두더지는 눈덩이를 굴린다. 눈덩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눈덩이 속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눈덩이 속에 다른 동물들이 파묻힌 것이다. 두더지는 눈덩이에 갇힌 동물들을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두더지는 “친구들과 뭐하며 놀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한국에서 ‘두더지의 고민’의 권장 연령은 4∼7세다. 실제로 한국에선 아이들이 많이 읽는다.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는 요즘, 한국어를 배우려는 해외 성인 독자에겐 그림책이 학습용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림책은 내용이 간단명료하고,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글의 양이 적어 처음 한국 책을 접하는 ‘입문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셈이다.

1일부터 열린 샤르자 국제도서전에선 경혜원, 김상근, 박현민, 최혜진 작가가 참가하는 그림책 북토크가 진행됐다. 그림책 작가들과 아이들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행사도 마련돼 성황을 이뤘다. 샤르자 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 잉글리시에그의 송민우 대표(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 담당 이사)는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는 무조건 소개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을 보니 영어 교육책을 한국어로 번역해 해외에 낼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통역가는 기자에게 “가수 유재하를 좋아한다. 요즘엔 밴드 잔나비, 싱어송라이터 심규선 노래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가 말한 음악가는 모두 한 줄 한 줄 곱씹을 만한 의미가 담긴 가사를 쓰고 부르는 이들이다. 해외의 젊은 세대가 처음 한국에 빠지는 계기는 주로 K팝이지만 점차 그들은 인디밴드의 노래 등 ‘조금 다른’ 음악을 찾아 들으며 한국어를 음미한다. 이들이 한국 그림책을 읽으며 사전에서 한국어를 찾아보고, 한국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 이상(1910∼1937)의 시와 박경리(1926∼2008)의 소설을 밤새워 읽는 날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림책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부르는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