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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획기적 신약’ 개발엔 소통-연대하는 조직 문화가 필수

입력 | 2023-10-05 03:00:00

하재영 아리바이오 R&D총괄 부사장·약사



하재영 아리바이오 R&D총괄 부사장·약사


신약 개발과 오케스트라 연주는 많이 닮았다. 각기 다른 악기가 모여 연주하듯 각기 다른 분야의 기관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발을 맞춰가야 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책임 기관의 인도 아래 구성원들 각자가 가진 지식과 기술, 경험 등을 하나로 모아 마침내 신약이라는 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신약 개발에선 긴밀한 팀워크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 과정에는 개발 회사와 허가 기관, 병원, 전문의, 임상 간호사, 환자 단체, 연구대행사(CRO) 등 여러 기관이 참여하게 된다. 필자가 지난 30년간 유럽과 영국의 글로벌 제약사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느낀 것은, 참여 기관 간의 투명한 소통과 수평적 연대 의식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첫째, 허가 기관과의 투명하고 책임 있는 소통이다. 신약 허가를 위한 요건과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대부분 정해져 있다. 언뜻 상담이나 안내가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신약의 안전성과 유효성, 그리고 품질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모든 자료를 완비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허가 기관과의 긴밀하고 투명한 소통이 꼭 필요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A)은 개발 회사와 미팅을 하기 전에 질문리스트를 사전에 제출 받고 미팅을 진행한다. 미팅 후에는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해 상호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개발사는 답변 받은 대로 시행하기만 하면 되는 ‘책임 소통’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다음에 허가 기관의 담당자나 책임자가 바뀌어도 동일한 주제로 다시 질의하고 확인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바람직한 소통 방법이다.

둘째, 참여 기관 간의 동료 의식, 즉 수평적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 신약 개발의 다양한 주체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 그리고 각자의 역량 그대로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서로 인정하고 지지하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일례로 최근 국내 대형 제약회사가 항암제를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과정에 참여한 전문의들과 긴밀하고 수평적인 동료 의식을 형성한 것이 성공의 바탕이 됐다고 전해 들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환자와의 연대 의식도 중요하다. 신약 개발 과정에 환자 단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모두 이를 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암제 연구 자선단체인 영국 암 연구소의 사례처럼 해외에선 환자 단체들이 정식 구성원으로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약 연구의 직접적 대상이 바로 해당 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K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위해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과정에도 다양한 환자 단체의 참여와 적극적인 지지가 더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가 신약을 연구개발해 시판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24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36개의 신약이 허가를 받아 시장에 출시됐다.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연간 1조 원 이상 판매되는 K블록버스터 신약이 등장할 기반이 충분히 다져졌다고 생각한다. 이 꿈이 현실로 이뤄지게 하려면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참여 기관 간의 투명한 소통과 수평적 연대 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며, 이를 널리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하재영 아리바이오 R&D총괄 부사장·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