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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러시아를 알고 싶다면 소련부터

입력 | 2023-09-16 01:40:00

◇아주 짧은 소련사/실라 피츠패트릭 지음·안종희 옮김/308쪽·1만7900원·롤러코스터




“소련의 해체를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0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21세기 차르(제정러시아 황제)’라 불리는 푸틴 대통령의 이 발언은 러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20세기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현재 러시아의 행동과 생각을 파악하기 어렵다.

저자는 소련과 현대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호주 가톨릭대 교수다. 책은 1922년 소련의 탄생부터 1991년 붕괴까지 70년 가까운 소련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소련사의 결정적 장면을 담은 사진 50장이 곁들여져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직관적으로 소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련의 태동을 알린 1917년 러시아제국의 몰락과 2월 혁명, 10월 혁명 등 러시아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으로 책은 시작된다. 1922년 레닌의 소련 창설과 후계자인 스탈린이 ‘경제 전환’ 프로그램과 중공업 중심의 계획경제 등으로 공산주의 체제를 확립해 가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스탈린은 1953년 사망했지만 이후 30여 년간 소련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내며 미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는 하루아침에 다가왔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 대처 과정에서 보인 소련 정부의 무능, 석유 호황의 마감에 따른 경제 불안, 동독과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의 잇따른 민주화 등이 겹치자 겉보기엔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은 1991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무엇 하나 하지 못한 채 자멸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책 곳곳엔 소련의 주요 구성원이지만 러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고,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도 드러나 있다. “소련의 유령은 소련이 붕괴할 때처럼 빨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를 비롯한 저자의 지적은 신냉전체제를 목도하고 있는 최근의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