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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시설 수련원으로 쓴다는데… 인건비만 매년 23억 원[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09-04 23:30:00

잼버리 파행 후폭풍… 대회 끝난 야영장 풀만 무성
시설 원상복구만 30억 원
글로벌 센터 활용방안 오리무중
조직위 인건비 늘어날 듯
전문가 “국제행사 검증 강화”



지난달 31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투잼버리’ 당시 운영본부와 병원으로 이용됐던 전북 부안군 새만금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주변에 펜스가 설치돼 있다. 전북도는 당초 전시체험 시설, 오토캠핑장 등 부대시설을 갖춘 센터를 완공한 뒤 대회를 치룰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늦어지면서 일부만 개관한 채 대회를 치렀다. 전북도는 내년 3월까지 205억 원을 투입해 시설을 완공할 계획이다. 

박영민 사회부 기자


“아이고 휑하네∼, 이 허허벌판에서 인자 뭘 하려나?”

지난달 31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잼버리 공원에서 만난 김모 씨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행사가 잘 끝났으면 여기도 명소가 됐을 텐데, 앞으로 오랜 기간 방치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지난달 12일 막을 내렸다. 이후 잼버리 파행 진행에 대한 검증과 정치권의 네 탓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세계 청소년의 꿈과 희망이 모였던 새만금 야영장은 하루가 다르게 허허벌판으로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 활용도 못하고 철거되는 시설들

지난달 31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끝난 전북 부안군 새만금 야영지의 텅 빈 모습. 각종 시설이 철거되고 야영장엔 풀이 무성하게 자란 상태다. 부안=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 크기(8.8㎢, 약 267만 평) 야영장에서 그늘 역할을 하고, 휴식 장소로 이용되던 대형 몽골텐트가 언제 있었나 싶게 모두 치워진 상태다. 대원들의 영내 활동을 위해 세워졌던 각종 구조물도 철거됐다. 대원들이 떠난 후 여러 차례 비까지 내리면서 풀들은 몰라보게 자랐다. 배수를 돕기 위해 설치됐던 배수 시설만 덩그러니 남았다. 잼버리 기간 텐트로 가득찬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였던 잼버리 공원에도 발길이 끊겼다.

이곳에서 잼버리가 열렸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건 대회 기간 병원과 운영본부 등으로 사용됐던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건물뿐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부안군 주민은 “수많은 아이들의 꿈이 모였던 장소였는데 이 건물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잼버리 기간 사용됐던 이 건물은 사실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로 개관한 것이다. 당초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는 교육·숙박시설 등을 갖춘 건물에 스카우트박물관, 야영장, 체육시설, 전시·체험시설 등 부대시설을 덧붙인 복합 공간으로 기획됐다. 대회 후에도 국내외 청소년들이 방문해 잼버리를 기념하고, 수련원 등으로 활용해 청소년 활동의 메카로 만들 계획이었다.

2018년 9월만 해도 전북도의 추진 계획은 ‘잼버리 대회 전에 모든 부대시설까지 건설을 완료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북도 예산 244억 원을 투입해 센터 건물만 간신히 지은 상태에서 임시 개관해 잼버리를 치렀다. 이 때문에 잼버리 기간 센터 건물 주변에는 추가 공사를 위한 펜스와 건설사의 사무용 컨테이너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북도는 도 예산 205억 원을 더 투입해 내년 3월 부대시설까지 모두 완공한다는 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 적자운영 우려되는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전북도는 당초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를 청소년 수련시설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잼버리 사태를 겪으면서 완공 7개월을 앞둔 현재까지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의 활용 가치를 높일 방안을 실무선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향후 센터 운영에 적잖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올 7월 제출된 연구용역에 따르면 센터 운영을 위한 인력만 35명가량이 필요하다. 인건비를 포함해 필요한 연간 운영예산은 22억6900여만 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2019년 처음 진행한 기본설계 용역 당시 추계 비용의 2배에 달한다.

잼버리 시설이 ‘돈 먹는 하마’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잼버리 대회 전부터 제기됐다. 2019년 9월 전북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서 이병도 도의원은 당시 “센터는 (대회를 치르기 위한) 행사성 건물로 대회가 끝난 후 적자운영이 불가피하며 사실상 개점 휴업이 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두세훈 도의원은 “1991년 강원 고성군 역시 잼버리를 위해 건물을 지었지만 대회 이후 활용도가 전혀 없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의 2019년 7월 연구용역에 따르면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는 이용 가동률이 50% 이상일 때만 사업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센터와 유사한 수익구조를 가진 국내 유스호스텔의 평균 시설가동률이 40% 안팎인 점에 비춰 보면 적자운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용역보고서는 “후속 개발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면 이용률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외에도 재정 부담 요인은 적지 않다.

전북도는 연말까지 잼버리 야영장 부지에 대한 원상복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차장을 만들 때 사용한 골재, 덩굴터널 자재, 간이펌프장 등 기반시설을 모두 철거하는 데 약 3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부대시설을 구축하는 데 약 235억 원을 지출했는데 며칠 사용하지도 못하고 다시 거액을 들여 철거하는 셈이다.

잼버리 기간 사용된 텐트 2만3000여 개를 처리하는 문제도 골칫거리다.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야영에 필요한 텐트와 매트 등을 사기 위해 33억 원의 예산을 썼다. 대회 이후 공공기관 창고를 임차하려던 계획이 무산돼 민간 창고를 빌려 텐트 등을 보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들어가는 비용도 예상보다 늘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이 접근해 대원들이 급하게 야영장을 떠나면서 정리되지 않은 짐들 역시 창고에 함께 보관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 관계자는 “짐들을 정리하려면 또 인건비가 들어간다. 기간이 길어져 창고 임차 기간(5개월)이 끝나면 임대료가 더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잼버리 조직위 운영비도 예상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조직위 정관에 따르면 조직위는 행사 종료 후 1년 내 위원총회 의결을 거쳐 해산된다. 조직위는 최대한 빨리 조직을 해산한다는 방침이지만 감사원 감사, 국회 자료 요구 등 행사 후에도 관련 업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조직위가 예상보다 오랜 시간 운영돼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추가 운영비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야영장 부지 활용 과정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잼버리 야영장 부지는 새만금 기본계획상 ‘관광레저용지’였는데 농업용지로 바꿔 행사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1846억 원을 들여 바다를 땅으로 바꿨다. 용지 매립 비용이 고스란히 땅값에 반영되면 분양가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토지 매각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 지자체 국제행사, 사전 사후 검증 강화해야
스카우트잼버리 전에도 국제행사를 치른 시설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해 지자체의 골칫거리가 되는 일은 여러 차례 있었다.

전남 영암군에서 2010년 처음 열린 국제자동차경기대회 F1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는 불리한 조건으로 대회 운영사와 계약을 체결해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가 났다. 결국 2013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사업의 타당성과 시설물의 사후 유지관리 계획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상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만든 시설이 돈 먹는 하마가 안 되도록 사전 타당성 검토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대형 국제 이벤트를 추진할 때 사후 정밀감사를 받는다는 전제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엄태석 서원대 복지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지원 때 정밀감사를 전제로 해야 하고, 지방의회의 감사 기능이 취약한데 광역의회 산하에 감사부서를 둬 잼버리 같은 행사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안에서




박영민 사회부 기자 minpr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