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우 정치부 차장
광고 로드중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다른 직업을 찾겠다.”
2018년 싱가포르의 한 호텔. 우리 외교 당국자는 미국 측 카운터파트가 한숨을 푹 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귀띔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그날, 미 국무부 당국자는 왜 가슴에 ‘사직서’를 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특유의 변덕 때문이었다. 오전에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말을 그날 오후 뒤집을 수 있는 트럼프의 즉흥적인 기질은 미 공직자들에게 악몽이었다고 한다. 특히 상대국이 있는 만큼 정책 결정에 신중함이 요구되는 외교 당국에선 트럼프의 손가락이 가장 큰 리스크란 자조까지 나왔다.
광고 로드중
올해 초만 해도 트럼프의 부상을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우리 정부도 몇 달 전부턴 당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기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 대선까지 1년 넘게 남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라며 긴장감을 내비쳤다. 백악관 간판이 바뀌면 안보·경제 이슈까지 전반에 걸친 새판 짜기가 필요한 만큼 대비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단 의미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 관계 지형은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대미 기조·정책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현 정부 초대 안보실장인 김성한 전 실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 타임”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커진 만큼 내년 미 대선 전까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확장억제 실무협의 등이 안착하도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트럼프 특유의 독단과 고집, 변덕은 윤석열 정부에 불편한 변수다. 한미 간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정보 소식통은 “그나마 트럼프 1기 땐 ‘정치 초보’ 트럼프가 참모 얘기를 좀 듣기라도 했다”면서 “돌아온 트럼프는 국정을 정말 자신 입맛대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위비 분담이든 주한미군 철수든 한국에 더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변덕까지 부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내 분열 가능성이 커져 트럼프가 이 내부 분열을 봉합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등 동맹국들에 부담스럽고 비싼 청구서를 내밀 거란 관측도 나온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아니, 돌아온 트럼프는 더 변화무쌍한 펀치를 언제 어디서 날릴지 모른다. 트럼프 변수가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떠올리면 그 준비는 지금 시작해도 늦다. 트럼프 신드롬을 분석하는 건 물론, 트럼프 집권 시 예상되는 리스크를 따져보고 맞춤형 대응책까지 마련해 둘 ‘트럼프팀’ 구성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다.
광고 로드중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