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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무위의 치(無爲之治), 지금 한 번 새길 만한 통치의 지혜다

입력 | 2023-07-23 23:57:00

노자 ‘도덕경’의 핵심 사상 ‘무위’는 제왕의 덕목
국가는 神器… 억지로 뭔가 이루려 말라는 것
경청하고 크게 결단하되 권한을 위임하라는 뜻도
세세한 지침까지 내리는 만기친람 통치 경계해야



정용관 논설실장


무위(無爲). 잘 알려진 대로 노자 ‘도덕경’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다. 중국 자금성 교태전에 이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60년 넘게 중국을 통치한 청나라 강희제가 직접 썼다고 한다. 강희제는 재임 기간 ‘무위지치(無爲之治)’의 리더십을 보인 걸로 평가된다.

노자 도덕경은 심오하다. 이 글에서 함부로 논할 정도의 식견을 갖추진 못했지만, 도덕경을 읽고 난 뒤 분명히 느꼈던 건 ‘군주론’과 대비되는 수준 높은 제왕학, 통치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자는 국가를 신기(神器), 즉 신묘한 그릇으로 봤다. 한마디로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다양한 측면이 혼재돼 돌아가기 때문에 단선적인 기준이나 가치로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라 다스리는 일을 작은 생선을 굽듯 조심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정치 현실에 비춰 보면 자신만의 선악 기준, 신념이나 좁은 식견에 빠져 단순하게, 또 함부로 국정을 펼치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문재인 정권 때 마구 헤집어놓은 부동산 정책이나 탈원전 정책, 소득주도성장 등이 빚은 각종 폐해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요컨대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고고하게 자연을 즐기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에 반해 억지로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시시콜콜한 직접 통치, 만기친람이 아니다. 잘 경청하고, 신중하되 과감하게 결정하고,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것이다. 자율적인 통치 시스템이다.

그런 점에서 무위의 정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한 번쯤 새겨볼 만한 고도의 통치 철학이 아닐까. 스스로 일하게 하는 리더십, 이를 끊임없이 살피는 리더십, 위임하되 위임하지 않는 리더십…. 무위에 입각한 권한 위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무위의 정치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출범한 지 만 1년도 한참 지난 상황에서 문 정권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작위(作爲)의 정치’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다.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평가되는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 세상이다. 최고 통치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주목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통치자도 지지층이든 반대층이든 실시간 여론을 파악하며 국정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 못지않게 강한 그립을 쥐는 스타일이다. 수능 킬러 문항 논란에서 보듯 때론 구체적인 지침과 가이드라인까지 준다. 강도 높은 질책이 있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전해온다. 그런데도 국정은 원하는 대로 착착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급기야 용산 비서관들을 내각에 차관으로 대거 내려보내는 일이 벌어졌다.

국정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경직되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참모는 할 말 하고 대통령이 경청하고 결론을 내리면 정제된 집행 절차를 밟는 게 순리 아닌가. 어공이든 늘공이든 최고 통치자의 생각이 뭔지만 쫓는 듯한 분위기는 곤란하다. 명품 쇼핑 논란이 비근한 예다. 누군가 신중해야 한다는 직언도 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로 논란이 벌어졌는데도 ‘호객’이네 ‘문화 탐방’이네 하는 변명과 옹호로 일을 더 키웠다.

수해 때 우크라이나행도 마찬가지다. 깊이 고민했고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국익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쿨하게 설명했으면 될 일을 “서울로 달려간다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열차가 출발한 상태였다”는 등 즉자적 방어에만 급급하니 답답한 것이다. 수해가 아닌 더 큰 안보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쩔 건가. 게다가 대통령 순방 중 여당 대표도 거의 동시에 미국을 방문하는 일이 벌어졌고, 대통령 부재 시 국내 상황을 책임져야 할 국무총리는 존재감을 보이지도 못했다. 툭툭 터져 나오는 이런 상황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대통령 원맨쇼로는 곤란하다. 지금, 한 번쯤 ‘무위의 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온갖 현안을 놓고 가짜뉴스, 괴담이 판을 친다. 유튜브 등 SNS 공간은 사실상 내전(內戰) 상태다. 그렇다 해도 우파 유튜버 전사에게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품격 있게 대응하는 의연함을 보이는 게 민심을 얻는 길일 수 있다. 필자가 해석하는 무위의 치는 권력의 두려움, 정치의 무게감을 직시하는 것이다. 꼭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무위의 지혜’를 보고 싶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