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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에 엘니뇨까지… ‘극한 기후’ 일상화[세상 바꾸는 과학/예상욱]

입력 | 2023-07-09 22:40:00


지난해 8월 8일 장마가 끝난 서울에 시간당 최대 140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남역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이날 하루 서울에 내린 비는 연간 총 강수량의 30% 수준에 달했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

지난달 하순 전국적으로 거의 동시에 시작된 장마로 지금까지 남부 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특히 광주를 포함한 전라남도 지역에는 짧은 시간에 최고 270㎜의 폭우가 내려 인명 피해를 포함해 크고 작은 피해가 이어졌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았지만 올해 우리나라 장마의 특징 중 하나는 강수 현상이 짧은 시간 안에 좁은 지역에서 집중되어 나타나고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폭염 수준의 고온 현상으로, 매우 극단적인 날씨 패턴이 지역적으로 시간적으로 공존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장마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날씨와 기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극단적인 현상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날씨·기후 현상의 발생이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대기 순환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1850~1900년) 대비 현재 전 지구 평균 온도는 현재 약 1.3도 높아졌다. 온도는 단순히 어떤 물체의 따뜻하고 차가운 정도를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온도는 시스템의 에너지 크기를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시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몇 평의 집의 온도가 1.3도 정도 오른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 바다와 육지의 온도가 1.3도 오른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 시기와 비교해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축적된 에너지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바다와 육지의 온도가 오르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그 위에 있는 대기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고 있는 날씨는 대기의 움직임의 결과이고 날씨의 평균적인 상태가 기후이다. 달아오른 육지와 바다에 쌓인 에너지가 대기로 전달되고 그로 인한 대기 순환의 변화가 바로 우리가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극단적인 날씨·기후 현상의 발생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올해 전 지구 평균 온도를 높일 또 다른 현상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천 ㎞ 떨어진 열대 중·동태평양 바다에서 관측되고 있다. 바로 엘니뇨(El Niño)다. 엘니뇨는 열대 중·동태평양에 이르는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2~7년의 주기로 평년과 비교하여 따뜻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엘니뇨가 발달할 때 전 지구 평균 온도(평균 에너지) 또한 높아지는데 이것이 세계 곳곳에서 가뭄·홍수·폭염과 같은 극단적인 날씨들과 그로 인한 자연재해의 발생이 평년보다 늘어나는 이유다.

‘엘니뇨’란 명칭은 페루 해안 지역에서 겨울철에 용승(바다 표층 아래 있는 차가운 물이 위로 상승하는 현상)이 약해지며 난류가 나타날 때가 있는데 이때 페루 선원들이 이 난류를 ‘엘니뇨 난류’라고 부른 데서 기원했다고 한다. 엘니뇨는 스페인어로 ‘소년’ 또는 ‘아기 예수’를 의미하는데 크리스마스 시기에 맞춰서 이 같은 현상이 최고조가 되어 엘니뇨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니뇨의 발생 원인은 열대 태평양의 무역풍 강도 변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무역풍의 강도가 약해지면 열대 서태평양 지역의 따뜻한 물이 중·동태평양 지역으로 이류(移流)됨과 동시에 동태평양 지역의 용승이 약화되어 해수면 온도가 따뜻해지면서 엘니뇨가 발달하게 된다.

엘니뇨가 날씨에 미치는 영향은 전 지구적이다. 어떻게 열대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지역적인 규모의 자연 현상인 엘니뇨의 영향이 전 지구적일 수가 있을까? 그 답은 역시 대기이다. 엘니뇨가 발생하는 열대 태평양 지역은 전 지구적으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가장 많은 양의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다. 그래서 평균 해수면 온도가 전 지구 바다의 다른 어느 곳보다 높고 막대한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다. 이런 바다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따뜻해지면 대기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전달된다. 엘니뇨가 발달하면서 대기로 전달된 에너지는 열대 태평양에서 수천~수만 km 떨어져 있는 전 지구 곳곳에 평년과 다른 대기 순환을 가져와 가뭄·홍수·폭염 등의 이상 기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올해 발달하고 있는 엘니뇨로 이미 미국 남부, 중국, 남미, 인도 및 아프리카 등지에서 최근 이상 고온 및 가뭄이 발생하였다. 특히 이 지역들의 주요 작물인 원두, 원당, 코코아, 밀 등의 가격이 이미 오르고 있으며 특히 식품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밀 선물 가격은 올 6월에 17%나 올랐다. 현재 남미 칠레에서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1993년 이후 최대 홍수로 구리 채굴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 전 세계 비(非)에너지 원자재 가격에 큰 변동이 우려된다. 최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서도 엘니뇨 발생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영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발달하고 있는 엘니뇨가 더욱 염려되는 것은 강한 엘니뇨로 발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엘니뇨는 대체로 늦봄이나 여름철에 발달하기 시작하여 겨울에 그 크기가 최고조에 이른다. 현재 엘니뇨로 6월 동태평양 지역 평균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이미 약 1.5도 이상 높아졌다. 이제 발달기로 접어든 엘니뇨의 특성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욱 극단적인 날씨로 인한 재해 방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엘니뇨로 인한 재해와 경제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이다. 단순히 엘니뇨 발생의 예측 정확도뿐만 아니라 엘니뇨로 인한 위기 평가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로 자연 현상인 엘니뇨의 발생 기작과 전 지구적인 영향 모두 달라지고 있다. 예측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극한 날씨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그로 인한 재해 및 경제적 파급효과가 날로 커지고 있는 이 시기, 불확실성이 줄어든 기후 과학 정보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요구된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