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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에 빠져 살았더니…연말랭킹 3개 전체 1위” 전업주부 김선영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3-06-03 12:00:00


2018년 국내 랭킹대회 운영 3개 단체(대한테니스협회·KTA,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KATA,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KATO)에서 연말랭킹 여자 국화부 1위를 차지했던 김선영 씨(56)는 “테니스가 좋아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따라온 결과”라고 회상했다. 3개 단체 연말랭킹 동시 1위는 김 씨가 처음이었다. 국내 아마추어 테니스 여자 최강으로 우뚝 선 김 씨의 출발은 단순했다.

김선영 씨가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에서 포핸드 발리로 공을 넘기고 있다. 1990년대 말 군인인 남편을 따라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김 씨는 국내 아마추어 최강으로 군림한 뒤 이제는 즐거운 테니스로 건강한 100세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양주=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1990년대 말 직업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양구에서 살 때 테니스를 접했어요.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 아이들과 가볍게 노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한 경험 덕에 발이 빨라 성장 속도가 빨랐습니다. 군인 가족들과 어울려 칠 때 여기저기서 ‘잘한다’했죠.”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때는 한국축구대표팀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출해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2002년. 그는 “한국이 포르투갈을 1-0으로 꺾을 때 응원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기억한다”고 했다. 남편이 대전 유성에서 교육받을 일이 있어 갔을 때 군인 가족 친선테니스대회에 출전했는데 초반에 탈락해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내 스스로 잘한다고 자만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인천 부평에 살 때였는데 처음 테니스동호회(영화클럽)에 가입해 아이들 학교 갈 때 함께 ‘출근 도장’을 찍으며 훈련했다. 거의 매일 테니스 쳤다”고 회상했다.

김선영 씨가 2023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했다. 김선영 씨 제공.

2003년 서울 송파에 정착한 뒤 송파화목클럽에 가입했다. 그때 동호인 대회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회원들이 지도해주고 함께 쳐줘 실력은 좋아졌지만 출전은 쉽지 않았다. 여자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로 나뉘는데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 등급이 있어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그렇다 보니 초보자는 파트너 정하기가 쉽지 않다. 김 씨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28일 개나리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개나리부 우승은 국화부로 승격을 의미합니다. 개나리부에 출전하는 모든 사람은 국화부가 되려고 간절하게 노력해요. 하지만 우승 못 하면 국화부에 낄 수가 없어요. 전 2년 반 만에 국화부에 올라갔습니다. 10년을 해도 국화부에 못 오르는 분도 많아요.”

김선영 씨가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에서 백핸드 발리로 볼을 넘기고 있다. 남양주=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국화부에 올라가자마자 6개월 만에 우승했다. 국화부에선 초보자지만 개나리부에서 실력자였던 터라 국화부 베테랑하고 나가서 거둔 성과였다. 그때부턴 고난이 시작됐다. 챔피언이니 핸디캡을 적용해 하급 선수와 파트너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당시엔 8강도 감지덕지했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3위까지 올랐고, 우승도 했다. 또 우승하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승 트로피만 100개 넘게 쌓았다”고 했다. 2011년 국민생활체육 전국테니스연합회(현 KTA)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KATO에서도 한 때 연말랭킹 1위를 했다. 결국 2018년에 3개 단체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는 “솔직히 1위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테니스가 좋았고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3개 단체 1위가 돼 있었다. 정말 기뻤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활동하는 동호회가 달라 자주 치지는 못하지만 남편하고도 테니스를 가끔 친다. 김 씨는 “남편하고 혼합복식 대회에 출전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했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부부 대회가 있어 나가려고 두 번이나 준비를 했어요. 한 번은 비가 와서 연기돼 무산됐고, 한번은 남편이 너무 열심히 훈련하다 엘보(팔꿈치 부상)가 와서 출전을 못 했죠. 제가 랭킹이 높으니 남편으로선 너무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나봐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함께 안 나가길 잘했어요. 경기하다 싸울 수도 있잖아요. 이젠 수도권엔 부부 대회가 없어져 출전하기도 힘들어요. 지방엔 아직 부부대회가 있지만 둘이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김선영 씨(오른쪽)가 3월 23일 열린 바볼랏배에서 우승한 뒤 파트너와 포즈를 취했다. 김선영 씨 제공.

그래도 부부동반 친선경기나 초청 경기가 있으면 함께 나가 게임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대회에 많이 출전할 땐 부상도 입는 등 힘겨운 시절도 겪었다. 그때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이 힘이 됐다. 김 씨는 “남편도 테니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배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보면 전업주부 같은 경우는 남편들이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늘 배려해주고 지지해줬다”고 했다.

테니스로 많은 것을 얻었다.
“테니스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전업주부지만 취미 활동으로 사회활동을 배운 것 같고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인관계도 좋아졌어요. 정말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물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당연히 따라왔죠.”

김선영 씨가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에서 상대 공을 받아넘기고 있다. 남양주=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김 씨는 “테니스 하는 것은 마치 건강 보험에 가입한 느낌”이라고 했다. “테니스를 치면서 정신적으로도 즐거운 경기를 하고 특히 엄청 건강해졌다. 현재까지도 특별한 지병 없이 즐겁게 테니스를 치고 있다. 주변에서도 건강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김 씨는 아마추어테니스계에선 전국구 스타다. 지방 대회 어딜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그는 “요즘은 유튜브에 내 게임 영상이 올라가다 보니 대회장에서 알아보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김 씨에게 골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하니 필드로 나가게 된 것이다. 테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골프에서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 씨는 “2년여 ‘외도’ 기간에 76타까지 쳤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꿈인 ‘싱글 스코어’다. 그는 “테니스도 재밌지만 골프가 주는 매력도 쏠쏠했다. 확 펼쳐진 자연 속에서 맘껏 채를 휘두르다 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건강이 따라오는 느낌이다. 지금도 테니스가 최애(最愛) 스포츠지만 가끔 지인들과 골프도 즐긴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저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어요. 테니스에만 몰두했었는데…. 골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테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김 씨의 현재 KATA 국화부 랭킹도 1위다. 하지만 이젠 성적에 연연하진 않는다. 그는 “올해 30개 대회 정도 출전했는데 성적은 들쭉날쭉하다. 8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우승하기도 하고…. 이젠 사람들 만나 즐겁게 테니스 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좀 욕심을 내면 발목 등에 부상이 온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여유를 찾는 것도 테니스가 준 교훈이다. 욕심내면 다친다. 이젠 즐기며 100살까지 공 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김선영 씨가 경기 남양주체육문화센터 테니스코트에서 라켓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남양주=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