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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사회, 더 치열해진 노인 일자리 경쟁… ‘초저임금’ 근로자 절반이 60세이상

입력 | 2023-05-10 03:00:00

‘초저임금’ 고령 비율 5년새 10%P↑
“노인들 위한 양질의 일자리 적어
남은 저임금-단순직에 더 몰릴 것”




김정수(가명·68) 씨는 4년 전 국내의 한 외국계 회사에서 정년퇴직했다. 명문대 출신으로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았지만 은퇴 이후의 처지는 동년배 친구들과 다를 게 없었다. ‘골프도 치고 취미도 즐기는 여유로운 노후’는 꿈에 불과했다. 월 200만 원에 못 미치는 노령연금은 부부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했다.

퇴직금으로 버티던 김 씨는 최근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어오는 일자리라고는 신용카드 배달원, 음식점 발레파킹(대리주차) 같은 ‘아르바이트성’ 일자리뿐이었다. 김 씨는 “카드 한 장 배달하면 1500원, 월 40만∼50만 원 정도 번다”며 “최저임금(올해 시급 9620원)이라도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싶지만 젊은이만 선호하더라”라고 말했다.

김 씨처럼 능력, 의지와 관계없이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 9일 동아일보는 최저임금위원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산출한 최근 5년간(2017∼2022년) ‘최저임금 미만 급여 근로자’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최저임금(당시 시급 9160원)보다 적은 급여를 받은 근로자 275만6000명 중 45.5%(125만5000명)가 60세 이상이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초저임금’ 급여를 받는 근로자 2명 중 1명이 고령자라는 뜻이다. 이 비율은 2017년 35.6%였는데 2018년 32.5%로 다소 줄었다가 이후 꾸준히 올랐다.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 중 60세 이상 고령층이 30% 정도임을 감안하면 ‘초저임금을 받는 고령자’가 빠르게 늘고 있고, 저임금 일자리도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고령자는 젊은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임금으로 갈수록 고령층 비율이 높은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비율이 가파르게 늘고, 노인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령인구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적고 모두가 도전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는 청년으로 먼저 채워진다”며 “남은 저임금, 단순·단기직으로 고령자가 더욱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빈곤율 OECD 1위… “건당 1500원 배달이라도 해야 생계 유지”




‘초저임금’ 절반이 고령자
퇴직금-연금만으론 버티기 힘들어
일 안할수 없어… 노인고용률도 1위
“불황 속 일자리 상황 더 나빠질 것… 고령층 위한 구직 지원 강화해야”


“미래 산업 구조가 인공지능(AI), 첨단산업 등으로 가면 고령자 취업의 기회는 더욱 상실될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9일 고령 근로자가 처한 현실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홍 교수는 “젊은이들도 업종에 따라 적응이 어렵다”며 “하물며 첨단산업 경험이나 학습이 부족한 고령층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노인빈곤율 OECD 1위… “단기 근로 내몰려”

노인들의 저임금 일자리가 특히 한국에서 문제인 이유는 한국 고령층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한국은 연금의 사회 보장성이 낮아 노인들이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1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의 월평균 수령액은 약 61만 원. 최상위 수급자들의 수급액도 200만 원 전후다. 생애 평균소득에서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뜻하는 소득대체율은 40%, 가입자들의 실제 소득대체율을 뜻하는 실질 소득대체율은 20%대에 불과하다.

정년과 연금 수급 개시까지 공백 기간(소득 크레바스)도 존재한다. 법정 정년은 60세인 반면 연금 개시 연령은 2023년 현재 63세이고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될 예정이다.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추가 지원금을 주는 기초연금이 있지만 부족한 소득을 뒷받침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러다 보니 고령이 되면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노인 빈곤율 조사에 따르면 이웃 나라 일본의 노인 빈곤율은 20.0%, 호주 23.7%, 미국 23.1%, 프랑스는 4.4%였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43.4%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노인들이 오랫동안 노동시장에 머물며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 역시 2021년 기준 34.9%로 OECD 1위다. OECD 평균(15.0%)의 2배 이상이다. ‘베이비붐 세대’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고용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관계자는 “재취업 수업을 수강하고자 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1 대 1 컨설팅을 요청하는 고령층까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노인 일자리는 단기·단순노무직에 치우쳐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55세 이상 취업인구 중 37.1%는 비(非)임금 근로자, 27.8%는 임시·일용직이었다. 반면 55세 미만 중 비임금 근로자는 17.1%, 임시·일용직은 17.4%에 불과했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팀장은 “한국의 고령층은 건물 청소나 아파트 경비 등 단순 노무, 단순 기계조작, 음식점 종업원이나 전단 배부 등 서비스 판매 노동에 다수 종사한다”며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더 나빠질 것… 구직 지원 강화해야”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 없이 혼자 사업체를 운영하는 ‘나 홀로 사장’이 426만7000명으로, 2008년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인건비 부담에 고용을 줄인다는 뜻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고령층 같은 근로 최취약계층”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 씨는 “고령층보다는 젊은 알바생을 선호한다”며 “인건비를 절감할 때는 고령 인력부터 정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층이 다양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구직 지원 강화, 구직 플랫폼 구성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노후 대비는 너무 부동산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 현금 흐름이 잘 나오는 노후 대비가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 양성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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