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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블룸버그 본사 앵커…“美월가-아시아 잇고 싶어”[김현수의 뉴욕人]

입력 | 2023-05-08 11:00:00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뉴욕 블룸버그 본사에서 만난 셰리 안(안지수) 앵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 동부시간 기준 오후 6시 미 경제방송 블룸버그 TV. 매일 이 시간이 되면 미 월가 하루를 정리하고 호주에서 한국 일본 시장이 열리기까지 전세계 투자자나 교수들과 3시간에 걸친 생방송을 진행한다. 그녀의 이름은 셰리 안. 혹시 한국계가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블룸버그 홈페이지에 ‘볼리비안 코리안’이라고 소개가 돼 있었다. 블룸버그 뉴욕 본사 최초의 한국인 앵커다.

무작정 알음알음 연락했더니 한국어도 유창했다. 볼리비아에서 자랐지만 늘 부모님이 집에서 한국어를 쓰도록 했고, 한국 유학을 유도(?)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한국 대학에는 동아리가 있어 무척 재미있다고 말씀하셔서 당연히 대학은 한국으로 가야겠다 생각해 왔어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뉴욕 본사에서 만난 안 씨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 이름은 안지수 씨. 2017년 뉴욕 본사에 온 이후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는 안 씨는 방송 시작 최소 6시간 전에는 출근해 각국 뉴스를 취재하고, 챙겨보며 바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 日 지진, 홍콩 우산혁명, 韓 탄핵   

“미국 방송에는 거의 스크립트라는 게 없어요. 3시간 생방송 동안 6,7명 인터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정확하게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하니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스튜디오에 가보니 앵커 데스크 위에 TV화면으로는 안 보이는 모니터가 붙어 있었다. 금융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프로그램으로 스크립트가 써있는 프롬프터는 아니었다. 미국은 아나운서와 기자를 따로 뽑지 않는다. 기자로 커리어를 쌓으며 앵커가 된다. 일본 방송은 거의 꼼꼼하게 스크립트 위주로 운영된다면 미국은 좀 더 앵커의 진행 능력에 기대는 편이라고.

안지수 씨도 15년 이상 기자와 앵커로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2014년 블룸버그로 옮기기 전까지 아리랑TV와 일본 NHK 를 거쳤다.

“딱히 어느 나라에서 살아야겠다 보다 기자로서 앵커로서 좋은 기회를 찾겠다는 마음이 더 강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일단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한국 통신사에 입사했다 아리랑TV로 옮겼죠.”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해 서울대 정치학과를 입학한 안 씨는 처음엔 한국어 수업이 쉽지 않아 필기하기도 벅찼다고 하지만 곧 성적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됐다. 아리랑TV 외교부 출입기자로 경력을 쌓다 마침 NHK가 영어 방송을 강화하는 가운데 NHK로 자리를 옮겼다.

아시아 지역의 주요 뉴스는 신기하게도 모두 그를 따라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그랬다. 도쿄 아파트까지 흔들리는 통에 한숨도 자지 못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헬멧을 끼고 생방송에 나서야 했다.

“지진도 겁이 났지만 길거리에 아무도 없는 정적, 방사선에 대한 우려까지 모두가 힘든 시기였어요. 체르노빌 트라우마가 있는 일부 유럽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죠. 기자니까 계속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 홍콩 블룸버그로 자리를 옮기자 마자 이번에는 중국 우산 혁명이 일어났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처음으로 행정장관 직선제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약 80일 이어졌다. 2016년 겨울은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벌어지던 때였다.

경제 뉴스에 더해 굵직한 취재 경험이 쌓이며 뉴욕 본사에 가보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미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뉴욕시가 봉쇄되고 이후 연일 속보투성이다. 신흥국 담당 기자이기도 한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이 아시아와 신흥국에 미칠 영향이나 한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을 인터뷰하며 각국 통화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요즘은 미 은행 위기로 숨가쁜 하루다.

마침 안 씨와 만난 이날은 한미정상회담차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해 있던 시기라 한국 뉴스도 많았다. SK하이닉스 실적발표도 앞두고 있었다.

“미국과 글로벌 투자자들이 주 시청자라 경제뉴스 주를 이루지만 정치, 사회 이슈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요하게 다뤄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반도체나 한국 배터리 소식은 미 월가나 글로벌 투자자들도 관심이 많고요. 요즘은 K팝 인기 때문에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관심도가 높아진 것도 느낍니다.”


● “커뮤니케이션이 중요…영어 발음 걱정 말아야”

블룸버그 캡처. 

이날 저녁 방송에서 안 씨는 한미 정상 부부가 미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헌화하는 모습을 생중계 화면으로 소개하고, 향후 한미 공급망에 미칠 영향에 대해 현장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음날 한미 정상회담도 상세히 알렸다.

“한국이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중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 국빈 초청이라 그 의미가 더욱 커 보였어요. 한국이 지정학적 경제적 동반자로서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죠. 이를 미국과 세계 시청자에게 알릴 수 있어 저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뉴욕 본사에는 한국계 기자들도 많다고 한다. 영어 기반 방송인이 되려면 당연히 영어를 잘해야 겠지만 블룸버그의 경우 반드시 해외에서 태어나 미국식 영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세계 각국의 영어 발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액센트를 걱정하며 영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고 일본에 갔지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 정치계 인물들과 수도없이 인터뷰를 하지만 어려움을 느낄 때 도 있다고. 지난해 역사적 폭우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를 인터뷰할 때에는 국가적 어려움에 공감하면서도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경제적 영향을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정계 인사들은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을 시작시간 한, 두시간 전에 주기도 해 급하게 ‘열공’도 해야한다.

“세계 각국 기준금리 같은 모든 디테일을 모두 외울 수는 없지만 많은 나라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속에 고민이 깊다는 트렌드는 같은 것처럼 큰 흐름을 잘 전하고 싶어요. 특히 한국과 아시아의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 미 월가와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