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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패배에도 존재감 키우는 행동주의 펀드… “성장기 진입”

입력 | 2023-05-02 03:00:00

얼라인, JB금융지주에 주주서한
KCGI는 DB하이텍 경영 지적
온라인 활용 주주환원 요구 커져
기업들 자사주 소각-배당 나서




3월 정기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는 비록 ‘현실의 벽’에 부딪혀 초라한 성적을 거뒀지만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권 행사를 위한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각 기업에 지배구조 개편,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제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소액주주들과 활발한 소통을 지속하며 존재감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한 국내 주주 행동주의가 단기적 유행을 지나 ‘성장기’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파트너스)은 지난달 10일 JB금융지주 이사회에 주주서한을 보내 △임시주주총회를 통한 김기석 사외이사 후보자 선임 △주식 연계 임직원 보상 제도 도입 △5월 중 기관투자가 간담회 개최 등을 제안했다. 정기 주총에서 김 후보자 선임 안건이 부결된 지 약 2주 만에 같은 후보를 재추천한 것이다.

이에 앞서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행동주의 펀드 KCGI는 3월 말 유한회사 캐로피홀딩스를 통해 DB하이텍 지분 7.05%(312만8300주)를 취득했다고 공시하며 보유목적을 ‘경영권 영향’이라고 밝혔다. 투자 배경으로 기업가치 저평가를 꼽으며 DB하이텍이 팹리스 사업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KCGI는 DB하이텍에 △자사주 소각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제안하면서 적극적인 주주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2016년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으로 주주환원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후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최근 행동주의펀드 현황 및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2018년 580개에서 2022년 3분기 기준 1094개로 2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주주제안 안건이 주총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12월 결산 상장회사 1267곳의 정기 주총 개최 현황 및 주요 특징을 분석한 결과 올해 정기 주총에서 주주 제안이 제출된 회사는 47개사(유가증권 23개사·코스닥 24개사)로 전년(29개사) 대비 62.1% 증가했다. 주주 제안으로 상정된 안건 수는 전년(98건) 대비 78.6% 증가한 175건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도 행동주의 펀드 및 소액주주들의 소통이 확대되는 데 일조했다. 일례로 주주 행동주의 플랫폼 ‘비사이드코리아’는 주주 제안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비대면 의결권 위임 서비스를 제공한다. 얼라인파트너스의 SM엔터테인먼트 대상 캠페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BYC 대상 캠페인 등이 비사이드코리아를 통해 이루어졌다. 지난달 29일 KT 소액주주 모임인 네이버 카페 ‘KT주주모임’ 측은 6월, 8월 임시 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이 힘을 합쳐 비영리법인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주환원 요구가 커지자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 분기배당 같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현대차(3154억 원), SK(1007억 원), KT(1000억 원) 등의 기업이 자사주 소각에 나서며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1일 기준 2조 원을 넘어섰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27일 처음으로 주당 600원의 분기 현금배당안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차익을 실현해 빠져나가거나 배당만 요구한다며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영향력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기업가치 저평가,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의 현상이 유지되는 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며 “자본시장이 발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