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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은 넘치는데 소통은 부족”… 되풀이되는 소각장 건립 갈등[메트로 돋보기]

입력 | 2023-04-05 15:04:00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사 앞에서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소각제로 가게’를 설명하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쓰레기를 처리할 또 다른 장소가 아니라,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마포구청 앞 광장. 가로 9m, 세로 3m 크기의 주황색 컨테이너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컨테이너 상단에는 ‘재활용 중간처리장 소각 ZERO(제로) 가게 1호점’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앞으로는 캔, 투명페트, 스티로폼 등 생활 쓰레기가 각각 ‘처리 전’과 ‘처리 후’로 나뉘어 1㎏씩 쌓여 있었습니다.

이날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올바른 분리배출이 이뤄진다면 쓰레기 배출량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고, 소각장 추가 건립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청 앞에 세워진 이 컨테이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박 구청장의 말은 실효성이 있는 걸까요?


● 마포구, 소각제로 가게 도입…실효성은 ‘글쎄’
컨테이너의 정체는 최근 마포구가 재활용품 중간처리장으로 선보인 ‘소각제로 가게’였습니다. 서울시가 상암동에 신규 광역자원회수시설(폐기물 소각장) 건립을 추진하자 이에 반발하며 내놓은 대안이라고 합니다.

마포구에 따르면 컨테이너 안에서 생활 쓰레기를 세척한 뒤 분류·분쇄·압착 등의 과정을 거쳐 깨끗한 재활용 자원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구 관계자는 “캔·페트병 압착·파쇄기를 구비해 재활용품의 부피를 4분의 1에서 최대 8분의 1까지 줄이는 가공작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시연을 보인 구청 관계자를 따라 소각제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폐스티로폼이 인고트(INGOT)라는 자원으로 재탄생하는 과정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감용기’라는 장비 안에 스티로폼을 넣으니 마치 가래떡이 뽑히듯 플라스틱 원료로 재활용되는 인고트가 만들어졌습니다.

마포구 ‘소각제로 가게’ 안에서 환경보안관이 쓰레기 처리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구는 주민 참여를 위해 유가보상제도도 마련했습니다. 무게에 따라 10원부터 600원까지 포인트를 적립해 일주일 후 현금 또는 제로페이로 환급해주는 방식입니다. 마포구는 구청 앞 1호점을 시작으로 향후 100개소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러나 분리배출과 소각제로 가게만으로 쓰레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서울시의 입장은 좀 다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루 평균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양이 3200t인데 이 중 2200t을 소각하고 1000t을 매립한다”며 “2026년부터 당장 1000t이 갈 곳이 없기에 아무리 쓰레기양을 줄인다고 해도 소각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 ‘1구 1소각장’ 약속 지키지 않은 서울시

서울시의 입장이 강경한 이유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2026년 1월 1일부터는 수도권 지역의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서울시에서 인천 수도권매립지로 보내는 일 평균 1000t의 쓰레기는 이때부터 갈 곳을 잃게 됩니다.

결국 서울시는 지난해 8월 마포구 상암동 소각장 옆에 새 소각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부지가 폐기물 처리시설로 지정돼 있어 거쳐야 할 행정절차가 간편한 데다, 소각장 영향 권역인 주변 300m 안에 거주민이 없고, 시유지라는 조건까지 갖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주민들은 “이미 소각장이 있는 곳에 또 소각장을 짓는 것은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해 10월엔 서울시의 소각장 부지 선정 배경 설명회가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된 2026년까지 소각장이 더 필요한 상황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소각장이 있는 마포구에 소각장을 추가로 짓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민들의 반발을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과거 서울시가 ‘1구 1소각장’ 계획을 추진한 사실을 감안하면 더 그렇습니다. 서울시의 폐기물 처리 광역화 시행 배경을 살펴보면, 1991년 9월 서울시는 폐기물 처리 방향을 ‘매립’에서 ‘소각’으로 변경하면서 광역자원회수시설(소각장) 11개 건설을 추진합니다. 1개소에서 2, 3개 자치구의 쓰레기를 공동으로 소각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서울시 폐기물 처리 광역화 시행 과정

시기
내용
1991년 9월
-폐기물 처리를 ‘매립’에서 ‘소각’으로 변경
-광역 자원회수시설 11개 건설 추진
1992년 4월
서울시-자치구 광역자원회수시설 설치 및 공동운영 협약
1995년 8월
‘1구 1시설’ 원칙으로 소각시설 건립 계획 추진
1998년 7월
광역화로 변경. 현재까지 유지
(자료 : 서울시)

이듬해 4월 시는 광역자원회수시설 설치와 공동 운영을 위해 각 구청과 업무협약도 체결합니다. 시에서 건설비를 전액 부담하고, 시설운영비는 반입량에 따라 구에서 부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1995년 8월 자원회수시설 건립을 촉진하기 위해 ‘1구 1시설’을 원칙으로 소각시설 건립 계획을 추진합니다. 자치구별로 자원회수시설 입지를 마련하고, 2001년까지 착공되는 시설에 대해선 건설비 전액을 서울시가 지원하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인 1998년 7월 서울시는 자원회수시설 건설 및 운영 기본방향을 ‘광역화’로 변경하면서 ‘1구 1시설’ 원칙을 폐기했습니다. 1구 1시설은 토지이용 및 투자 측면이나 환경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환경부도 광역시설 설치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광역화 방침은 현재까지 유지 중입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가동 중인 광역자원회수시설 4곳(마포, 강남, 노원, 양천)에서 다른 구의 폐기물까지 모두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소각장을 만들 때마다 서울시는 자치구 주민들과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마포구 소각장 논란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 “당근보다 중요한 건 소통”
소각장 등 쓰레기 처리 시설은 시민들이 가장 혐오하는 시설입니다. 서울시가 2020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선호시설 인식조사’에서도 10개 시설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서울시도 ‘1000억 인센티브’는 물론, 대관람차 서울링을 상암동 하늘공원에 설치하는 등의 ‘당근’을 속속 내놓고 있지만, 갈등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습니다.

서울시의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지금 단계에서 1구 1소각장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이미 소각장이 있는 마포구에 또 소각장을 설치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만큼 다른 방안을 찾았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또 소각장을 짓더라도 부지 선정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다양한 시민 대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나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해나가는 게 맞았다고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시설이라고 해서 공개된 논의 절차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소각제로 가게’를 발표하던 날 마포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언론을 통해 (대관람차) 서울링 등 여러 당근책을 내놓고 있지만, 마포구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 없다”고 했습니다. 소각장을 기피시설이 아닌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나 인센티브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한 소통을 통한 협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