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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천문대 아닌 우물 형상화… 선덕여왕 정통성 상징”

입력 | 2023-03-28 03:00:00

‘첨성대의 기원’ 정연식 교수 인터뷰
“우물이 별을 쳐다본다는 뜻의 이름
혁거세 탄생 우물-마야부인 몸 본떠
여왕, 왕권 신성성 등 강조하려 축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경주 나정(蘿井)에는 우물자리를 빙 둘러 5개의 구덩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물 기둥이 세워졌던 흔적으로 봤지만 저는 북극오성(北極五星·북쪽 밤하늘에서 제왕을 상징하는 5개의 별)을 상징하는 항아리 같은 것을 묻었을 거라고 봅니다. 구덩이의 배치는 북극오성을 이루는 별의 배열과 같아요.”

정연식 명예교수가 24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인문사회관에서 첨성대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최근 책 ‘경주 첨성대의 기원’(주류성)을 출간한 정연식 서울여대 사학과 명예교수(67)는 2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신라 종묘에선 구덩이 6개에서 항아리 5개가 출토됐는데, 나정 주변 구덩이와 마찬가지의 상징이라는 것. 정 교수는 “이 같은 배치는 옛 사람들이 북극오성의 정기를 받은 우물에서 제왕이 탄생했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왕들은 언제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삼국유사에는 “나정 옆에 벼락빛(별빛) 같은 이상한 기운이 땅에 드리워 있고 …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하나가 있었다”는 혁거세의 탄생설화가 기록돼 있다. 정 교수의 이 같은 해석은 경주의 대표적 유물인 첨성대가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의 상징물이라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첨성대의 정체는 학계의 오랜 논쟁거리다. ‘별을 바라본다(瞻星)’라는 이름 탓에 조선시대부터 천문대라고 보는 의견이 많지만 출입구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높고 좁은 창구를 비롯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정 교수는 천문대설의 한 근거가 되는 7세기 첨성대 건립 이후 천문 기록의 증가에 대해 “당시 여러 가지 특이 현상에 대한 기록이 전반적으로 급증했다”며 “역사적으로 삼국통일전쟁 등 동아시아가 뒤흔들리던 시기라 기록을 많이 남겼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1990년대 말에는 정(井)자형 장대석 등 첨성대의 모양으로 볼 때 생산, 생명을 상징하는 ‘우물’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됐다. 정 교수는 우물설을 지지하는 한편 더 나아가 첨성대가 형상화한 우물의 기원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연구해왔다.

우물설이 옳다면 첨성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정 교수는 “사람이 올라가 별을 쳐다본다는 것이 아니라 우물이 별을 쳐다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시조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앞에 보이는 세 산봉우리의 능선을 그리면 탄생을 상징하는 세 별인 삼태성의 형상이 보여요. 나정 우물이 삼태성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지요. 첨성대도 이와 마찬가지로 별을 바라보는 우물을 형상화한 건축물입니다.” 정 교수는 “세 개의 별이 탄생을 상징한다는 건 경기 파주의 고려 말기 고분 벽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추론을 통해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왕권의 정통성과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축조한 것이라고 본다. 박혁거세의 탄생뿐 아니라 아래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첨성대의 디자인은 석가모니를 낳은 마야부인의 몸(엉덩이와 옆구리)을 형상화한 것으로 선덕여왕이 석가모니의 후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조선사회경제사가 전공인 정 교수는 첨성대에 빠져 수십 편의 관련 논문을 써 왔다. 정 교수는 “고(古)천문학과 음운학을 넘나들어야 하는 힘든 연구였지만 첨성대의 기원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 같아 손을 뗄 수 없었다”며 웃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