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부산 동구문화원 전문위원 “중국 고서상 차림은 잘못된 표현 장발에 밀짚모자 쓴 것으로 바꿔야”
부산 동구문화원 이상국 전문위원이 최근 발간한 저서 ‘부산 동구 독립유공자 34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위원은 “1920년 일본인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 투척 의거를 한 박재혁 의사에 관한 역사 기록 상당 부분이 잘못돼 있어 바로잡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박재혁 의사(義士)가 일본인 경찰서장에게 폭탄 투척을 했을 당시 중국 고서상(古書商) 차림이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부산 동구문화원 이상국 전문위원(63)은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20년 9월 14일 박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의 역사 기록이 상당 부분이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박 의사는 고서상으로 위장한 게 아니라 장발에 밀짚모자를 쓰고, 흰색 조선 옷을 입고 있었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홈페이지에 기록된 박 의사의 공훈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 의사는 고서 보따리로 폭탄을 등에 지고 경찰서를 찾았다. 고서를 꺼내는 척하며 폭탄을 꺼내 서장을 유창한 일본말로 꾸짖은 뒤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이 위원은 해당 내용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의 발표를 토대로 박 의사 의거를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보도한 도쿄아사히신문의 1920년 10월 4일자를 독립기념관 마이크로필름을 뒤져 처음 찾아내 분석했다. 또 일본고베신문 등 우리나라와 일본의 신문을 비롯한 각종 사료(史料)를 확인한 결과 고서상 등에 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료 확인 결과 이 위원은 “바지 주머니에 폭탄을 숨겼던 박 의사는 빈손으로 서장에게 다가가 폭탄을 던졌다”며 “서장은 우측 발과 무릎 관절에 찰과상을 입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박 의사의 의거에 극적인 부분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며 “독립을 위해 폭탄을 투척한 박 의사의 의로움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확한 역사 기록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이 같은 내용을 최근 발간한 저서인 ‘부산 동구 독립유공자 34인’에 담았다. 162쪽의 책에는 박 의사와 그의 조력자 김영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장건상, 1929년 임시정부 유럽 특파원 서영해 등 동구에 본적을 둔 독립운동가의 삶이 들어 있다. 이 위원은 이들 본적지를 직접 찾아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싣고, 이들의 독립활동을 증빙하는 사료를 책에 첨부해 그간 잘못 알려진 역사 기록의 수정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위원은 본래 역사학자가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잠수함·군함 건조하는 일을 하다가 2020년 부장 직책으로 정년퇴임했다. 독립운동가 연구는 2013년 경성대 대학원의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시작했고, 2021년 동구문화원 전문위원에 위촉된 뒤 더 매진했다.
독립운동가 연구의 길로 이끈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부친은 책에도 실린 1942년 부산 친우회 항일전단 살포사건의 이광우 애국지사(건국훈장 애족장)다.
이 애국지사는 일제 폭정에 항거해 비밀결사 조직(친우회)을 만들고, 군수품 제조공장인 ‘조선방직’ 폭파를 위해 항일 투쟁 종용 전단을 만들어 공장 기숙사와 부두 등에 뿌렸다. 이 활동이 들통나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10개월간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주사기로 피를 뽑아 다시 고문자의 몸에 뿌리는 ‘착혈’이 대표적이었다고 한다.
이 위원은 “아버지 같은 독립운동가의 삶이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 연구에 매진했다”며 “연구 범위를 부산 전체로 확대해 ‘부산의 독립유공자’란 책을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비매품인 이 책은 동구문화원을 통해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