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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복 입고 전사한 동생 소대원들…이모 ‘따뜻하게 갔다’며 울어”

입력 | 2023-02-27 11:38:00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가 전하는 ‘우크라의 지난 1년’
친척·지인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내복·약품 보내
최전방 러 군인들 최신 무기 갖추고 살의 강해
전기 끊긴 아파트, 사이렌 울려도 못 내려와…추위·어둠보다 힘든 건 물 못 내리는 화장실
러에 밟힐 때마다 다시 일어섰던 우크라인들…‘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끝’이란 절박감에 버텨
‘푸틴식 사고방식’ 설 자리 없애는 게 중요…그래서 우크라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쟁




지난 1년 간 고향의 친척·지인들과 연락하며 상황을 살펴온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는 “이번에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결연함, 절박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여성동아



“러시아군이 훈련이 잘 안 돼 있고 무기도 구식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직접 전장에서 싸우는 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최전선의 러시아 군인들은 최신 무기에 훈련도 잘 돼 있다고 해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군을 몰살시키겠다는 살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죽일 때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고….”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고국을 침공한 지난해 2월 말 이후 1년 넘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연락하며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부모는 인근 국가로 피난을 갔지만 많은 친척들이 아직 고향에 남아있다. 사촌동생의 남편들, 육촌 남동생은 현재 최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째 답이 없으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한 번은 육촌동생이 계속 답장이 없다가 십자가 모양의 특수부호 하나만 딸랑 보내온 거예요. 전사한 줄 알고 너무 걱정했는데 동생이 휴대전화를 잠깐 볼 수 있었던 틈에 ‘오케이’란 뜻으로 보낸 거였어요.”

쉐겔 교수는 2월 14일 경기도의 자택 인근에서 기자와 만나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주민들의 ‘지난 1년’을 담담히 전해줬다.

―전장에 있는 친척들의 안전은 어떤가.

“육촌동생이 소대장인데 지금 부상을 당해서 잠시 집에 와있다. 벌써 4번째 부상이다. 지난번 3번째 부상 땐 복부가 크게 다쳐 배변주머니를 달아야 했는데 조금 나아지자마자 바로 복귀했더라. 이모는 동생이 외아들이라 걱정이 많다. 동생은 말한다. ‘내가 복귀 안 하면 나대신 누군가가 소대장을 맡을 텐데 경험 부족한 사람이 가면 소대원들 100% 죽는다고. 전투 경험이 많은 내가 가야 살아남은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다’고.”

―군인들은 어떤 얘기를 많이 해오나.

“연락 닿을 때마다 보내달라는 물건들이 많다. ‘바주카포 하나 보내달라’고 농담도 하고(웃음). 추운데 있다보니 내복, 양말 같은 게 중요한데 한국 내복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땀이 안 차서 좋다고 한다. 한국산 등산용 양말도 반응이 좋다. 재질이 좋아서 3, 4일씩 행군해도 발이 괜찮다고 한다. 군 보급품도 있지만 땀이 잘 차서 오래 행군하면 양말이 피부랑 눌러 붙어 벗을 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

―‘K내복’이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다.

“수십 벌 씩 보내는데 육촌동생의 소대원들이 고맙다면서 내복 입은 단체 사진을 보내줬다. 보통 같은 동네 출신들로 부대가 꾸려지기 때문에 저도 어렸을 적 봤던 동생들이었다. 어느덧 커서 다 아저씨가 돼 있었다. 근데 며칠 뒤 이모한테 연락이 왔다. 소대원들이 전투에서 많이 죽었다고 했다. 이모는 ‘그래도 네가 보내준 내복을 입고 따뜻하게 갔다’며 울었다.”

―보내준 내복 며칠 입어보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힘닿는 데까지 물품을 보내고 있다. 지혈대나 진통제는 물론이고, 의외로 감기약과 치질약을 정말 필요로 한다. 군인들이 참호에서 1년 내내 있다보니 늘 감기를 달고 산다. 전쟁 중에 감기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고통이라고 한다. 근데 한국 감기약이 또 그렇게 약효가 좋다고 한다. 유럽에서 들어오는 구호 약품은 1주일 먹어도 나을까 말까인데 한국 감기약은 하루치만 먹어도 바로 나아진다고 한다. 치질약도 처음엔 얘기를 못 꺼내다가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털어놓더라. 화장실도 없이 늘 긴장되는 환경이다 보니 치질이 많을 수밖에 없고, 말 못할 고통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로 물품은 어떻게 보내나.

“그게 늘 어렵다. 바로 보낼 방법은 없고 주변국인 폴란드나 체코로 보내면 지인이나 자원봉사자들이 공항에서 넘겨받아 우크라이나로 배달하는 식이다. 일반 소포는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 폴란드로 들어가는 분들을 수소문해 물품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20만 원 정도 드는 수화물 비용은 제가 부담한다. 1년 간 물품을 구해서 보내는데 20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절반이 수화물 비용이다. 돈도 돈이지만 물품을 가져다줄 봉사자를 구해 현지 지인들과 공항에서 만나게 연결해주는 작업이 쉽지 않다.”

―주민들도 폭격과 정전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

“키이우에 있는 지인 중에 60대인 교육 공무원이 있다. 이 분이 아파트 14층에 사는데 얼마 전 연락이 닿았을 때 ‘한 달 넘게 집 밖을 안 나가고 있다’고 했다. 전기가 안 들어와 엘리베이터가 거의 작동을 안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대피 사이렌이 울리지만 매번 14층을 걸어 내려갔다 올라오기가 힘들어 그냥 집에 있는다고 한다. 전기와 수도도 끊겨 늘 춥고 깜깜한데 그보다 힘든 건 화장실 문제다. 물을 못 내리니까. 나는 한국에서 너무 편하게 있구나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

―전장이 아니더라도 일상 자체 전쟁인 것 같다.

“외삼촌 부부가 격전지인 헤르손 근처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몇 백 미터 근처에서 미사일이 종종 터진다고 한다. 삼촌도 처음엔 놀라다가 요즘엔 ‘오늘도 왔네’ 이러신다고 한다. 계속 놀랄 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보호 기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외삼촌은 대피 사이렌이 울려도 무덤덤하다. ‘지하실로 내려가 봤자지. 집 무너지면 지하실에서 죽는 거지’ 이러신다.”

―러시아군과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

“지난 성탄절에 집회를 하는데 한국으로 피난 온 젊은 우크라이나인 여성이 저한테 다가오더니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열손가락 손톱이 다 빠져서 새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그 분이 말했다. ‘그 짐승들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봐봐.’ 그 분은 고향인 동부에서 남부로 이동하던 중 러시아군에 붙잡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점령지역 쪽을 지날 땐 잡힐 것에 대비해 휴대전화를 모두 초기화 한다.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잡으면 휴대전화부터 빼앗아 남편이나 남자 형제, 남자친구가 우크라이나 군인인지 확인한다고 한다.”

―그 여성의 휴대전화에 뭔가가 있었던 것인가.

“당시 이 분은 러시아 점령지를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고 미처 휴대전화를 초기화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근데 남자친구가 징집된 상황이어서 군복 입은 사진과 ‘살아 돌아올게’ 같은 대화 내용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은 이 여성의 두 손목에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된 꽃 문신이 있는 것을 보고 ‘네가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는 들지 않게 해주겠다’면서 손톱을 모조리 뽑았다고 한다.”

―이 전쟁을 보는 러시아인들의 생각을 접한 적이 있나.

“제 우크라이나인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절친한 러시아인 친구가 있는데 평소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비판적 성향이 강해서 전쟁이 난 뒤에도 잘 지내보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우크라이나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러게 왜 너희는 푸틴한테 까불었어?’라고 말해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원인 제공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침공을 정당화하는 시각이다. 우리는 엄연히 독립적인 주권국가인데 계속 러시아 눈치를 살펴야 한다는 것인가. 최근 러시아에서 군 징집이 이뤄지면서 반대 여론이 나오긴 하지만 징집에 반대할 뿐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는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고통의 역사가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저는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러시아가 저지른 일들을 상세히 알지만 소련 체제에서 자란 저희 엄마만 해도 잘 모른다. 심지어 1930년대에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집단농장화 하기 위해 자행한 ‘홀로도모르(대기근)’ 사태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는데 엄마는 이 마저 잘 모르셨다. 제가 너무 답답해서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따져 물었다. 할머니는 몸소 겪어봐서 잘 아실 텐데 왜 엄마한테 얘길 안 해주셨냐고. 할머니는 ‘네 엄마와 우리 가족을 보호하려고 그랬다’고 하셨다. 아이가 학교에서 말 잘 못했다간 아이도 다치고 온 가족이 KGB(소련 정보기관)에 끌려갔을 거라고. 이번 전쟁도 러시아가 100년 넘게 반복해온 행동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련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도 말 못할 정도로 다들 숨죽였다면, 이젠 러시아의 악행이 눈에 그대로 보이게 됐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버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하나의 강력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러시아에 짓밟히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왔는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의 DNA를 말살하려는 것 아닌가, 영원한 속국으로 만들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번에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결연함, 절박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단지 푸틴 한 명이 죽는다고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그가 죽어도 10, 20년 뒤 ‘제2의 푸틴’ 또 나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점령 대상으로 보는 푸틴식의 사고방식이 다시는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이다.”


올레나 쉐겔△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생
△2003년 키이우국립대 한국학 전공(학, 석사)
△2008년 서울대 국문과 한국현대문학 박사 수료
△2010년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우크라이나학 박사 수료
△2009년~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행사 통역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