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운전자 습관 등 여러 분야 활용 車 데이터 시장 年 38% 성장 전망 배터리-금융 눈독… 車제조사 부정적 자동차硏 “국내도 논의 시작해야”
자동차 운행 과정에서 생성되는 각종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면서 해당 데이터 소유권을 누가 가져야 하는지가 새로운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완성차업체 외에도 전기차 배터리, 정비 등 하드웨어(HW) 관련 업체들은 물론이고 보험사 등 금융 부문에서까지 눈독을 들일 만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미국 등에 비해 한국은 관련 법·제도 마련이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차량 데이터 관련 EU·미국 법제 동향’에 따르면 유럽 의회는 올해 3월 ‘데이터 법(Data Act)’에 대한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2월 공표된 초안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는 주행 정보 등과 관련된 차량 데이터를 제3자에게 공유할 의무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해 관계자들이 데이터의 가치를 공정하게 배분하고, 데이터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지녔다. EU는 또 ‘자동차 분야 경쟁법 일괄면제 규정’ 개정안을 통해 올해 6월부터 5년간 독립적 수리·정비업자에게 차량 데이터 접근을 보장하기로 했다.
사물인터넷(IoT)과 무선통신 기술 발전으로 커넥티드카 보급이 확산하고 있고, 이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를 손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차량의 위치, 부품 상태, 도로나 기상 등 주변 환경, 운전자 습관 등 데이터 종류도 다양하다. 캐나다 연구기관 이머전리서치는 차량데이터 시장이 2020년 64억1000만 달러(약 7조9000억 원)에서 2028년 869억1000만 달러로 연평균 38.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차량 데이터를 독점해 왔던 완성차 업체들은 해킹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여전히 데이터 공유에 부정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는 2020년 ‘수리권 보장법(Right to Repair Law)’이 통과됐다. 차량 제조사가 독점하던 데이터 접근 권한을 넓히는 게 핵심이다. 이후 미국자동차협회(AAI)는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며 소송까지 제기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차량 데이터 공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 국내 커넥티드카 기능을 탑재한 차량은 지난해 11월 기준 649만2087대로 전체 등록 자동차(약 2546만 대)의 25.5%를 차지하고 있다. 이서현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차량 데이터 관련 움직임은 자동차 산업 세력 구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며 “공유 범위, 방법, 비용 등 중요한 부분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만큼 한국도 관련 논의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