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대기업간 기술탈취 논란 부처별 산재된 법제… 신속대응 불가 “기밀유지협약 체결 관행 확립 등 양측 모두 기술인식 높여야”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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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알고케어가 자사의 기술을 대기업 계열인 롯데헬스케어가 도용했다고 주장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스타트업의 기술보호가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두 회사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 같은 기술침해 주장이 나왔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한 구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법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관련 법률 산재… “기술보호 관문 찾기 어려워”
업계에선 스타트업이 기술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제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각기 운용되기 때문에 피해 기업이 기술보호 ‘관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광고 로드중
스타트업의 기술보호 역량도 낮은 게 현실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2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전국 3400개 기업 조사)에 따르면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역량 점수는 49.3점으로 대기업(87점) 대비 56.7%에 그쳤다. 일례로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팍스모네’의 경우 신한카드와 4년째 법정공방을 해오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회원 간 결제 서비스 관련 핀테크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에서 특허를 등록했다. 하지만 업무 협력을 제안하며 관련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신한카드가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영업활동이 막혔다.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는 “직원들은 뿔뿔이 떠나고 장기간 소송을 거치며 법률비용이 계속 발생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도 여전히 대기업은 중소기업, 스타트업에 대한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업 제안을 모방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 “대기업과 스타트업 기술보호 인식 높아져야”
현재 기술 도용 논란을 빚고 있는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도 NDA를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창업한 알고케어의 정지원 대표는 “롯데헬스케어에 NDA를 요구하자 ‘롯데지주가 세운 회사라 그룹 회장이 계약해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절대 따라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롯데헬스케어 측은 “알고케어로부터 NDA 체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해당 회사의 속사정과 기술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그 노력을 기술 탈취로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술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가 ‘갑질’을 하는 건 아닌지 먼저 조심해야 한다”며 “투자 담당자 한둘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적으로 스타트업과 상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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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기술침해 관련 손해배상은 3배 이내 배상이다. 기본 손해배상액의 3배 이내를 배상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배상액을 ‘3배 이내’에서 ‘5배 이내’로 상향할 것을 제안한다. 손 변호사는 “법원에서 입증해 산정되는 기본 손해배상액이 평균 5000만 원 수준”이라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의 기술을 베껴 별문제 없이 잘되면 좋고 아니면 물어 주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송창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회장)는 “기업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밀어 주고 보호하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