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12월 사이 배춧값 폭락… 대표적 원인은 ‘시장의 균형’ 붕괴 시장에는 수요-공급이라는 힘 존재, 힘의 차이에 따라 상품 가격 변화 가격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 두 힘이 같아지는 균형점에 도달 균형 가격이 형성돼 시장이 안정
지난해 전남 무안군 망운면의 한 배추밭에서 주민들이 월동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배추 가격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요가 늘면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간다. 무안=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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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배트맨’(다크나이트)으로 익숙한 영국 출신 영화 배우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2003년 개봉 SF 영화를 소개합니다. 가상의 제3차 세계대전 후 살아남은 인류는 ‘인간의 감정’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감정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하는 약물 ‘프로지움’을 개발하고 권력자는 이를 모든 국민에게 투약하도록 지시합니다. 주인공은 반역자들을 체포하는 정부 비밀 요원입니다. 그는 어느 날 프로지움 투약을 건너뛰었고 난생처음 감정을 경험하며 갈등이 시작됩니다. 영화의 제목은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입니다.
이퀼리브리엄은 평형, 균형, 마음의 평정을 뜻합니다. 동식물이 나고 자라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새싹이 움트는 순환이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상태를 ‘생태계 평형(equilibrium of ecosystem)’이라고 합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가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구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염과 파괴를 치유하고 건강한 자연으로 회복하는 생태계 평형이 아직은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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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 10월 배추의 가격은 포기당 1만5000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후 지난해 12월에는 포기당 3000원으로 폭락했습니다. 똑같은 배추인데 가격이 널뛰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배추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요?
학생들에게 배추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을 모두 써보라고 하면 아마도 이렇게 쓸 것 같습니다. 인건비, 종자 가격, 토지 임대료, 비료 가격, 운반비, 전기료, 대출 이자 등. 방금 나열한 요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모두 ‘생산비’라는 점입니다. 만일 생산비가 1000원인데 10배인 1만 원을 받는다면 단번에 폭리라고 비난할 겁니다. 우리 정서에는 ‘가격 = 생산비’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든 생산비, 즉 원가는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공개하면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기분이 나빠질지도 모릅니다. 또한 가격 인상을 전하는 뉴스나 기사에서도 항상 부품이나 원료 가격 상승을 그 원인으로 제시합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쉽게 납득할 테니까요. 그러나 이는 선입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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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두 힘이 균형을 이룬 가격은 C와 같습니다. A와 C 모두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A는 약간만 건드려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반면 C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치 생태계 평형처럼 원상태로 돌아오는 회복 능력을 가집니다.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균형 가격이 형성되고 이 가격에서 거래가 이루어질 때 시장은 안정을 찾습니다. 이 점을 이퀼리브리엄의 첫 자 ‘E’로 표시합니다.
배추 가격의 변화를 마셜의 가위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작년 가을 배추 가격 폭등은 생산 차질로 인해 공급량이 수요량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겨울 배추의 가격 폭락은 불경기에 따른 수요 감소와 높은 가격을 기대한 공급 확대가 함께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감정의 기복, 즉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우리는 균형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이퀼리브리엄은 실험실이나 약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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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욱 광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