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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생명의 간명한 구도와 ‘결정적 지식’으로 과학 공부의 고속도로에 진입하라”

입력 | 2022-12-04 15:49:00

‘빅히스토리..’ 펴낸 과학문화운동가 박문호 박사, 과학 학습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박문호 박사가 대전 신성동 자택에서 소파 장식물을 가리키며 빅뱅 이후 전자, 양성자, 광자의 상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장식물의 수는 아내 황해숙 여사가 놓은 것이다. 박 박사는 “광대하고 장구한 우주와 생명이 이들 3가지 요소의 상호 작용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과학의 측면에서 봤을 때, 우주와 생명의 세계는 전자, 양성자, 광자의 무한한 상호작용이다.”

과학문화운동가 박문호 박사는 4일 “그동안의 과학 연구와 경연을 통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며 “앞으로 이들 3가지 주인공과 ‘결정적 지식’이 바탕이 된 빅히스토리 강연을 통해 과학 공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빅히스토리(Big History)는 기술의 관점을 우주와 지구, 생명까지 확대한 통합 학문적 역사를 말한다.

6월 ‘박문호의 빅히스토리 공부’를 펴내 주요 서점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린 그는 “빅히스토리에 대한 간명한 접근은 방대해 보이는 과학 공부의 관문 앞에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뇌과학자이면서 학습공동체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박자세)을 이끄는 박 박사는 우리 사회의 과학수준을 교양과학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대중의 과학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워왔다.

그는 자신이 재직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책 출간 후 첫 빅히스토리 강연을 통해 새로운 과학공부 접근법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ETRI 커뮤니티 ‘프로젝트#60’이 내달 이 책에 대한 네 차례 강연을 추진 중이다. 박 박사의 각종 과학 강연은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많은 석·박사 연구원들에게도 인기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대중에게 최신 과학 논문과 서적에 소개된 다양한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전하는 그는 종이신문 3개를 하루도 빠짐없이 읽고, 시간 날 때마다 시와 수필을 즐긴다.

박 박사는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ETRI에서 30년간 재직하면서 수많은 자연과학 서적을 섭렵해 뇌과학, 우주론, 지질학 강연과 저술을 해왔다.

새로운 과학공부 접근법을 강조하는 박 박사를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대전 유성구 신성동 자택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이제 세계를 간명하게 설명하자
 
― 별들의 탄생, 생명의 발현, 문명의 탄생, 문화의 발달 등 복잡다기하고 광대하며 장구한 우주를 겨우 3가지 요소로 해명할 수 있다는 건가.

“에둘러 가지 않겠다. 전자, 양성자, 광자는 자연을 구성하는 입자이다. 우주의 시작에서 지구와 생명의 탄생,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 인간 의식의 출현에 이르는 자연 현상의 유장한 역사가 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다.

― 언어도 그 상호작용의 결과인가.

“빅뱅 후 양자 확률의 거품 같은 시간을 통과한 후 우주가 급팽창한 것도, 이 후 별이 탄생하고, 은하가 형성되고, 행성이 만들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생명 현상은 별빛을 구성하는 광자가 전자에 흡수되고 양성자를 세포 외부로 방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45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하고 20억 년 전 3000종류의 새로운 광물이 출현하고 약 7억 년 전 다세포 생명이 나타났다. 2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해 언어라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 것 역시 3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의 무한한 중첩이 만들어낸 결과다.”
 
― 누가 빅히스토리의 주인공을 3가지로 규정했나.

“10여 년 전 읽은 리처드 파인만의 책에서 그가 이들 3가지 요소를 언급했다. 하지만 한 문장 정도의 간략한 언급이었다. 나는 그 이후 이를 우주와 세계를 보는 근본 원리로 발전시켜 강의하고 글을 써왔다. 그 결과 이제 전자, 광자, 양성자의 상호작용을 우주 그 자체로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어떤 과학자도 다 동의할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 과학 공부, ‘결정적 지식’으로 시작하라
 
― 과학을 공부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 지식과 이론의 홍수 속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과학에 대해 새롭게 공부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과학에 대한 정보가 빠른 속도로 쏟아진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해 보이는 과학 지식도 한 발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 동일한 모듈의 무한 반복이고 결합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정적 지식의 습득이다.”

― 단편적 지식에 매달리지 말란 말인가.

“지식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파편적 과학 지식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결정적 지식이야말로 과학의 문을 여는 열쇠다. 그걸 잡고 나아가야 한다. 결정적 지식을 습득하면 과학 공부의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지식을 가속적으로 습득하는 흐름만 타면 된다.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일은 결정적 지식을 제시해 학습자들이 톨게이트로 들어가게 하는 일이다.”

― 결정적 지식이란 뭔가.

“이를 테면 주기율표 같은 것이다. 이는 물리학, 화학, 지질학, 세포생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사용된다. 결정적 지식은 많은 지식을 파생시키고 많은 질문을 유도해낸다. 학문 전체의 구조를 알게 해준다. 다행스럽게도 자연과학 각 분야의 결정 지식은 다섯 개씩을 넘지 않는다. 전에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저술하면서 결정적 지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번에 내놓은 빅히스토리는 어느 것이 결정적 지식인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결정적 지식을 익히고 난 다음에는….

“항상 강조하지만 공부는 반복이고 암기다. 새로운 학문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에 익숙해지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새로운 용어나 개념은 반복해서 읽고 쓰면 점차 쉬워진다. 기초가 단단해지면 지식에 가속도가 붙는다.”
 

박문호 박사는 외부 강연이 없는 매주 목요일 대전 유성구 신성동 자택에서 줌으로 과학 강연을 한다.  박문호 박사 제공

● 이제 교양과학을 넘어설 때다
 
― 빌 게이츠의 지원으로 빅히스토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빅히스토리 관련 서적의 판매량은 그 나라의 과학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책은 여러 사람이 쓰면 통일성과 연관성을 잃기 쉽다.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과학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나는 10년 이상 강의하고 저술해온 우주론과 지질학, 생명공학, 뇌과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빅히스토리를 썼다. 우주, 지구, 생명, 인간 4개 분야의 결정적 지식을 파트별로 10가지씩 선별해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 책이 좀 어렵다고 한다.

“고교생 및 대학생 수준의 난이도를 유지했다. 어른들이 자연과학에 입문하면서 짧은 시간에 전체 그림에 접근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양과학서 수준으로 쉽게 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과학을 말랑하게 소개하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 수준을 높이 끌어올리는 ‘대중의 과학화’다.”
 
● 자연과학에는 심판관 ‘자연’이 있다
 
― 자연과학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른 학문과는 달리 자연과학에는 진실을 가려주는 최후의 심판관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연과학은 자연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주목한다. 자연과학은 아무리 판타스틱한 이론이라도 자연이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은 아낌없이 버린다.”
 
― 우리의 과학 독서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과학책이 많이 출판됐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교양과학을 넘어서는 수준 있는 과학책이 10만 부 이상 팔리지 않는 나라다. 우주에 관한 외국인 저작 가운데 스테디셀러가 있는데 40년 전 출간된 것이다. 그 이후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 책이 아직도 히트인 것은 우리 과학 독서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 빅히스토리에서 경영 직관도 얻으라

― 빅히스토리가 근본적 미래 전략에 시사점을 주나.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유명한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과 파이를 만들려고 한다면 먼저 우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파이 한 조각을 만들어 내기에 앞서 우주가 먼저 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우주한테 물어봐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의식은 분자의 패턴의 변화일 뿐이다. 인간 의식의 진화는 우주 진화의 한 부분이다. 빅히스토리를 알지 못하면 인간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도 말하기 어렵다. 경영자들이 뭔가 전체에 대한 직관(intuition)을 얻고 싶다면 우리의 의식을 만들어낸 우주의 진화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구라는 행성이 어디로 갈 것인지, 생명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호모사피엔스가 어떤 상황을 맞이할 것인지 짐작을 할 수 있다.”
● 신문과 시를 읽어라
 
― 매일 3개의 종이신문을 읽는다.

“신문은 매번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경북 울진군 후포라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여유 있는 친구가 어린이신문을 구독해 빌려봤다. 중학교 때부터 성인 신문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 머리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 지금은 동아일보를 포함해 3가지 신문을 매일 읽고 있다.”
 
― 신문을 빅데이터 라고 하는데….

“신문은 현시대를 읽는 종합적인 맵(지도)을 제시해 주는데, 그런 점에서 빅데이터다. 편집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종이신문을 권한다. 과학자로 과학문화운동가로서 책이나 논문 등을 많이 읽는데 신문은 그런 길고 어려운 글을 현시점의 시사성에 연결해준다. 매일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읽는다.”
 
― 시를 즐겨 읽는다.

“시는 의미는 숨기고 이미지를 드러낸다(not saying, just showing).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것을 이미지로 승화해준다. 언어적 사고는 논리체계를 만들어 비행선을 우주까지 보내는 역할을 했다. 이미지를 쓰는 시각적 사고는 창의성의 근본이다. 아인슈타인이 모든 물리학을 기하학으로 바꿔놓고 싶다고 한 말이나 복잡한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한 ‘파인만의 도형’은 이미지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성과를 대중에게 전달할 때 시적 이미지를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