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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튜브]가을이 가기 전에 듣고 싶은 음악들

입력 | 2022-11-22 03:00:00


늦가을은 사람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병(病)이자 축복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의 해 질 녘.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11월 산속을 걷는 길은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나뭇잎들이 떨어져 쌓이고 삭아들면서 찻잎이 찻물에 우러나는 듯한 향기를 낸다. 코로 깊이 들이마시면 몸에도 좋을 것만 같다. 소소한 감각의 향연 속에 지난해와 그 이전의 숲들이 남긴 기억들도 쌓인다.

이런 계절에 불만에 잠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달력은 고작 한 장이 남고, 결산의 때는 기업들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해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며 꿈꾸고도 손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가을에 흔히 소환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심각한 자기 회의(懷疑)의 주인공이었다. ‘재능도 없는 데다 게을러터졌다’며 걸핏하면 자책감에 빠지곤 했다. 그의 사랑받는 선율들이 흔히 심한 가을앓이와 결부되는 것은 이 계절이 주는 자기 불만과도 관련될 것이다.

그의 표제적 작품인 ‘만프레드 교향곡’에 나오는 주인공도 그렇다. 이 센티멘털한 러시아인은 영국 문호 바이런의 시 ‘만프레드’를 네 악장의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만프레드는 심각한 자기 연민과 회의에 빠져 스위스의 알프스 산속을 방랑하는 주인공이다. 이 계절에 귓전으로 불러내는 이 복잡하고 심각한 교향곡은 충족과 불만 속을 방황하는 ‘가을인(人)’들에게 동질의 위안을 안겨준다.

바람 많고 흐린 날이 많은 북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작곡가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은 ‘늦가을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악장, 선율은 마디마디 조각나서 일부는 현에, 일부는 플루트에, 일부는 첼로의 낮은 음역에 나부낀다. ‘드뷔시적인 브람스’라 할 만큼 다양한 색상의 팔레트로 채운 소리의 물결은 옷깃에 찬 바람이 스며드는 흐릿한 날의 풍경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억제할 수 없는 격정으로 1악장이 마무리 지어지면, 시선이 탁 트이는 풍경 속에 한층 더 절절한 과거의 추억 속으로 2악장이 우리를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번 소개한 바 있지만 영국 작곡가 랠프 본윌리엄스가 쓴 ‘토머스 탤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도 바람 불고 쓸쓸한 이맘때 벗해 듣기 좋은 작품이다. 16세기 성가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현의 울림이 아득한 과거의 환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1829년, 갓 스무 살의 젊은 작곡가 멘델스존은 북쪽 나라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빼앗긴 메리 여왕의 흔적이 깃든 옛 성에서 감회에 젖어보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폭풍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하는 여행이었다. “아버지, 여기서 마실 만한 것은 위스키뿐이랍니다.” 그가 묘사한 스코틀랜드의 어둡고 쓸쓸한 풍광도 우리의 늦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듯하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스산한 오후에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 곡을 들을 때는 독일 작가 슈토름의 소설 ‘호반’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옛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 같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에 대한 상념이랄까. 가을이 그 종적을 감추기 전, 한층 어둡고 묵시록적인 11월에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도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두 손을 깊이 주머니에 찔러 넣은 사람의 센티멘털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11월은 근대 오페라 최후의 큰 봉우리로 남은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 달이다. 그는 1924년 11월 29일에 후두암 치료를 위해 찾은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났다. 벨기에는 이국의 대가를 국장으로 예우했고 6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며칠 뒤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돌아와 밀라노의 대성당(두오모)에서 두 번째 장례식이 열렸다. 이 장례식에서는 그의 두 번째 오페라 ‘에드가르’ 장송 합창, 레퀴엠이 연주됐다.

이해도 한 달 남짓을 남겨둔 주말,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오른다. 이 한 해 동안 내가 소망한 것을 얼마나 성취했으며 그것을 위해 나는 얼마나 부지런히 살았을까, 얼마간의 성취감과 함께 작은 후회들도 밀려온다. 서쪽 하늘을 부옇게 물들이는 붉은 해를 보며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느린 악장 아다지오를 듣는다. 브루크너가 자신이 경모하던 바그너의 죽음을 접하고 쓴 악장이다. 해가 짧아져서 산에서 내려오는 발걸음이 바쁘지만 ‘바그너 튜바’의 긴 울림은 귀에 선명히 남아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