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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며 ‘공감’ 배워… 점점 인간적인 사람으로”

입력 | 2022-11-09 03:00:00

연극 ‘빛나는 버러지’ 주연 황석정
처음엔 무대가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자유롭고 즐거운 놀이터



올해로 데뷔 21년 차인 배우 황석정은 “거리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저를) 엄청 반가워해주신다”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연기자로 기억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평범하지만 판타스틱하고 경쾌하지만 무시무시한 이야기!”

배우 황석정(51)은 한창 연습 중인 연극 ‘빛나는 버러지’에 대한 설명을 이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에서 29일 초연되는 ‘빛나는 버러지’는 영국 출신 극작가 필립 리들리가 쓴 3인극이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7일 만난 그는 “오랜만에 섬뜩한 이야기를 마치 자전거 타고 산책하듯, 마트에서 쇼핑하듯 아주 산뜻하게 풀어낸 수작을 만났다”며 웃었다.

2015년 영국 런던의 소호극장에서 초연된 ‘빛나는 버러지’는 주거 문제라는 외피에 담긴 인간의 욕망을 그렸다. 무주택자 부부 질(송인성 최미소)과 올리(배윤범 오정택)에게 시청 공무원 미스 디(황석정 정다희)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꿈의 집 창조를 통한 사회재생’이라는 슬로건을 설파하는 미스 디는 부부에게 ‘공짜 집’ 계약서를 내민다.

“미스터리한 인물인 미스 디는 다 큰 어른도 ‘어린이 여러분’이라 불러요. 가난으로 약해진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거죠. 미스 디는 마치 구원자처럼 나타난 겁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처럼 공짜 집에도 대가가 따른다. 입주 직후부터 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 어느 날 집에 노숙자가 침입하고, 놀란 부부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노숙자가 죽어갈수록 집이 좋아진다는 걸 깨닫는다. 살인할수록 풍요해지는 집에서 부부는 죄책감과 공포감을 잊게 된다.

“부부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희생을 합리화해요. 작품에선 살인이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우리가 더 좋은 걸 갖기 위해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의 희망을 뺏고 있진 않을까요?”

황석정은 강렬하고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왔다. 현란한 말투와 몸짓을 구사하는 짝퉁 핸드백 판매업자(KBS 미니시리즈 ‘비밀’), 엄격하기로 악명 높은 재무부장(tvN 드라마 ‘미생’) 등 맡은 역마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처음엔 평범한 연기는 아예 하지 못했어요.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라 그런지 ‘아름답다’ 같은 말도 대학 졸업 때까지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연기자는 그런 말을 잘 구사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괴로웠어요.”

표현할 줄 몰랐던 그는 연기를 하면서 표현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경력이 쌓일수록 그토록 어려웠던 연기도 몸에 밴 듯 편해졌다.

“꾸준히 연기를 하면서 인간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연기가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된 셈이죠.”

주로 드라마, 영화에서 활동하던 그는 최근 대학로로 돌아와 다시 ‘무대 맛’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연극 ‘일리아드’ ‘천변카바레’ 등 1인극만 3편에 연달아 출연했다.

“예전엔 무대에 서는 게 부담스럽고 스트레스 받고 신경 쓰였는데 지금은 너무 자유롭고 즐거워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 내겐 무대가 곧 놀이터예요.”

내년 1월 8일까지, 전석 5만5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