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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성주]新산업 주도권, ‘기술 표준’ 선점에 달렸다

입력 | 2022-10-25 03:00:00

카카오톡 이탈자 복귀, ‘표준 메신저’이기 때문
VHS·익스플로러, 기술 표준 되며 시장 장악
융복합 신산업 표준 확보 위한 전략·정책 펴야



이성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15일 일어난 카카오톡 사태로 떠들썩한 한 주가 지나갔다. 14일과 16일에 카카오톡 사용자 수는 4112만 명에서 3905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라인은 43만 명에서 128만 명으로, 텔레그램은 106만 명에서 128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수치는 3일 만에 회복되어 18일 카카오톡 사용자 수는 다시 4093만 명에 이르렀다. 우리가 카카오톡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카카오톡이 일상 깊이 파고들어 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카카오톡은 모바일 메신저의 표준 정도로 생각되곤 한다. 표준이란 공인된 기관 혹은 관련 협회에서 합의하는 방식으로 공식표준(de jure standard)이 제정되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오랫동안 사용되며 사실상 표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실표준(de facto standard)은 단순히 기술이 우수해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기술적 우수성만이 아니라 제품이 나에게 주는 총가치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 가치는 각 제품의 기능적 우수성, 미적 우수성, 사용 용이성과 같은 기술적 우수성 외에도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y)로 인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또 다른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 이에 우월한 기술이라고 반드시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외부효과란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그 제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해당 제품의 사용자 수와 가용한 보완재(함께 소비했을 때 더 큰 만족을 주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네트워크 외부효과로 인한 가치가 커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를 먼저 출시해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윈도 사용자가 증가하게 되면 호환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다시 사용자들이 윈도를 구매하는 이유가 된다. 마찬가지로 카카오톡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기본 모바일 메신저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선물하기, 쇼핑하기, 게임 등 카카오톡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에의 참여 기업이 늘어나며 사용자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가치 또한 커진다.

네트워크 외부효과의 특성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발생했던 소니와 JVC의 비디오카세트 표준 전쟁에서도 잘 나타난다. 영상을 기록하는 비디오테이프리코더에 있어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은 JVC의 VHS 방식에 비해 휴대성과 화질에 있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VHS보다 1년 앞서 출시되어 시장 선점에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JVC는 VHS 기계를 대여 형태로 시장에 빠르게 확산시켰고, 비디오 제작사들과 협력하여 VHS 방식의 비디오 영상 보급을 촉진시켰으며, 핵심 부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여 VHS 방식의 제조를 지원하였다. 사용자 기반과 보완재를 공격적으로 확대한 결과 VHS 방식이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가 베타맥스 방식의 가치보다 커져, 후발주자인 VHS 방식이 시장에서 채택되었다.

이처럼 기술 표준을 장악한 기업은 산업의 실질적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과거 MS사는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익스플로러의 사용자 기반을 크게 확대하였다. 그 결과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익스플로러가 당시 절대강자였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시장점유율을 크게 앞서게 되었다. 따라서 기술 표준은 산업과 국가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기술 패권 전쟁으로 국가 간 블록 단위 협력을 강화해 가는 현 시점에서 기술 표준은 우리나라가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실제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 6G(6세대 이동통신), 자율주행과 전기차, 유전공학 등 융복합 신산업의 주도권을 잡고자 치열한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다. 표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기술 역량을 높여야 한다. 경쟁 제품들에 비해 기술적 우수성이 높은 경우 사용자 기반이나 보완재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해당 제품의 총가치가 증가하여 시장에서 채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볍고 빠르며 사용성이 우수한 구글 크롬이 결국 익스플로러를 대체한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사용자 기반과 보완재를 함께 성장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 디지털 네트워크 기반으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플랫폼 경제하에 네트워크 외부효과는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술의 영향력을 우리는 경험했다. 기술 표준 선점을 위한 전략과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성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