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종해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 편
올해만큼 국내 수학계에 경사가 거듭된 해가 또 있을까요.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 수학 국가 등급 최고 그룹 승격,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종합 2위 등 그야말로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수학 교육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붕괴했고, 대학에서 수업이 안 될 정도라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하도 궁금해서 최근 금종해 국제수학연맹(IMU) 집행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IMU는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여하는 곳이지요. 그는 고등과학원 교수이자 대한수학회장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운다는 분수 문제를 소개합니다.
길이가 45cm인 색 테이프를 영훈이와 지연이가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지연이가 가져갈 수 있는 색 테이프는 몇 cm일까요?
영훈= 45cm의 5/9만큼 가져갈게.
지연=그러면 나는 나머지를 가져갈게.여러분은 이 문제가 쉽게 이해가 되는지요. 어른도 잠시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분수가 뭔지 모르고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2019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포자의 첫 갈림길이 초등학교 3학년 ‘분수’에서 시작된다고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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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가르치는 걸까요. 그리고 학생들이 어렵게 느낀다면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상식적인 답은 쉽게 가르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쉽게 가르쳐야 하고, 그 방법을 찾아서 제공하는 게 교육자와 국가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 노력을 다한 뒤에도 남는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니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 현실은 쉬운 걸 쓸데없이 꼬아서 어렵게 가르치고, 어렵다고 하니 안 배워도 된다며 수능 출제범위에서 빼버린다고 합니다. 2009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행렬, 2015 개정 교육 과정에서는 공간벡터가 삭제된 게 그런 이유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 잘 몰랐습니다만 요즘 수능 수학은 고2, 고3 1학기 범위에서만 출제할 수 있다는군요. 금 교수는 “하도 어렵다고 아우성치니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인데 덕분에 대학에서 수업이 안 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한 결과겠지요. 입시에 안 들어가는 내용을 공부할 학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금 교수는 우리가 ‘수포자’라는 정체불명의 부정적인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수포자’라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초학력이 미달하는 학생들은 있습니다. 그러면 ‘포기자’인가요? 이 학생들이 “더 이상 나는 공부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겠다”라고 천명이라도 했습니까. 수학을 어렵게 느끼고 싫어하는 학생도 분명히 있습니다. 싫어한다고 다 포기자인가요? 공부가 좋아서 하는 학생은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싫다’와 ‘포기한다’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나라 문해력이 문제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금 교수는 “진짜 수학 포기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는 걸 포기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수학이 어려워서 싫은 건 ‘포기’가 아니라 ‘포비아(공포)’일 뿐이고, 그러면 나라와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겁먹지 않고 재미를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안 한다는 것이죠. 앞서 말했지만 어려워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고 설득도 하고요. 그런 노력은 1도 안 하고 어렵다고 이 내용, 저 내용 빼고, 그래도 어렵다고 하면 ‘수포자’라고 낙인을 찍고, 더 나아가 안 배워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는 나라야말로 진짜 ‘수포자’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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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왜 학생들이 쉬운 것만 배워야 합니까? 문제는 쉽게 낼 수 있지만 공부는 어려운 것도 배워야지요. 아니면 나라가 안 배워도 평생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던지요. 그러지도 못하면서…. 이건 나라 망하자는 이야기에요.”저는 우리 사회, 교육 당국이 금 교수의 이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피를 토하며 걱정하겠습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