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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지속하는 마음[동아광장/최인아]

입력 | 2022-06-11 03:00:00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도
좌절의 시간 겪어야 성취하는 법
책임과 노력의 가치 알아야 한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없겠지만 요즘 세대는 그보다 몇 배 강력한 의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그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작은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되 지속적으로 재미를 느끼면서 성취도 하려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제법 많다.

나는 행복이나 열정 같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부담마저 느낀다.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싶어 했고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내가 열정적인 사람인가 자문해 보면 ‘글쎄’다. 최근에 읽은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엔 유명한 건축가가 등장한다. 그는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실제로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살아갈 사람들이 조금의 편리라도 더 누리도록 고심하고 고심한다. 건축 분야처럼 만든 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는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쉬운데 소설 속 노 건축가는 겉으로 눈에 띄는 건축, 건축가 자신이 빛나는 건축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경쟁 입찰에선 특히 유리할 게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한다. 일이란 무엇인지,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소설은 한마디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줄곧 ‘일’을 떠올리며 읽었고 그러면서 열정적이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20년 전쯤부터 열정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 같다. 아마도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 관한 책 ‘미쳐야 미친다’가 널리 읽힌 후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무렵부터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일에 대한 열정을 강조하고 우리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을 칭송할 때 무엇보다 그이의 열정을 강조했다. 그런데 열정이란 말엔 오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열(熱)’자 때문이다. 뜨거울 열. 자연스럽게도 우리는 열정이란 말을 들으면 인파이터의 폭발적 에너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마라톤에 가깝고 일터에서의 성취는 시간과의 싸움일 때가 많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평가받지 못해 기죽고 절망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러다 가늘게 성취와 성장 같은 열매를 맺는다.

많은 경우 어떤 일을 시작하는 계기는 ‘좋아하는 마음’이 틀림없다. 좋아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겠다는 것이 시작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걸 직업으로 삼아 돈도 벌고 재미도 느끼고 성취도 하겠다는 뜻이라면 하고 싶은 마음만으론 충분치 않다. 시작과 성취 사이의 길은 결코 평탄한 신작로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를 연애와 결혼으로 풀어낸 소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생각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이 사람과 일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때도 시작은 좋아하는 마음이겠으나 부부로 한평생 사는 일이 녹록할 리가 없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맺은 인연이 숱한 고비에도 흩어지지 않고 소중한 가족으로 오래 남아 있게 하는 힘에 대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말한다. 상대에 대한 의리, 애틋함, 책임감, 때론 미운 정까지…. 일상은 낭만적이지 않다.

이미 종영했으나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창희는 제법 큰 수익이 보장된 비즈니스를 스스로 날려버리고 한참 고생한다. 도대체 왜 그랬느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뭐든 입으로 털잖냐, 근데 이건 안 털고 싶다. 이 말들이 막 쏟아지고 싶어서 혀끝까지 밀려왔는데 밀어 넣게 되는 그 순간,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되는 거다”라고.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볼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좋아서 시작한 일을 지속해 끝내 열매 맺게 하는 것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이 보인다. 의무를 다하고 약속을 지키고 폐를 끼치지 않으며 하기로 한 건 어떻게든 해내려는 마음, 또 동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조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손흥민 선수의 부친 손웅정 선생의 말처럼 “성공은 선불”임을 기억하는 마음, 계속 성장해 어느 날엔가는 ‘구씨’처럼 멋지게 도약하고 싶다는 마음…. 맨 앞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이 끝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좋아하는 마음 이면의 지속하는 마음도 돌아보면 좋겠다. 어른이라면 말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