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잡자 여야 합의 방송법 걷어차더니 대선 지자 ‘좌파 방송장악법’ 밀어붙이나
이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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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다시 들어갈 때가 온 것이다. 야당 시절 당론으로 채택한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을 집권 후 뭉개더니, 야당이 되자 또 다른 법을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화장실 드나들 때마다 언론관이 달라지는 더불어민주당이다.
KBS 이사진 11명은 여야가 7 대 4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은 여야가 6 대 3으로 추천하면 정부가 임명한다. 사장은 이사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한다. 민주당은 KBS MBC 모두 이사를 13명으로 늘려 여야가 7 대 6으로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하는 법안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당이 이사회를 독식하거나 야당이 반대하는 사람을 사장으로 임명하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집권 여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데 야당이 반대할 리 있겠나.
모처럼 여야 합의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숙원이 이뤄지는가 싶었다. 그 기대를 깬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취임 100일쯤 지나 관계부처와 비공개 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온건한 인사가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 결국 법 개정은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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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7명은 방송 관련 단체가 추천한다. 먼저 지상파 3사 사장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방송협회가 2명을 추천한다. 현재 회장은 박성제 MBC 사장이고, 차기 회장은 김의철 KBS 사장이다. 문 정부가 임명한 사장들이 누굴 추천하겠나. 방송사 종사자 대표가 2명을 추천하는데 사내 교섭대표 노조인 언론노조가 추천할 가능성이 높다. 친언론노조 성향인 방송기자, PD, 기술인 연합회가 총 3명을 추천한다. 시청자위원회도 3명을 추천하는데 정부가 2018년 노사 합의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시청자위원을 구성하도록 권고한 바 있어 여기에도 노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나머지 학회(3명)와 시도의회의장협의회(4명) 몫의 일부를 더하면 좌파 진영이 사장 임명에 필요한 ‘매직넘버 17’을 차지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수 성향의 ‘대선불공정방송국민감시단’은 20명까지도 가능하다고 비판한다.
정 화장실이 급했다면 민주당이 “몇 년간의 숙고 끝에 나온 법안”이라 자부했던 여야 합의안을 먼저 떠올렸어야 한다. 왜 이사회 대신 뜬금없이 운영위원회인가. 역할이 추가된 것도 없는데 왜 25명으로 늘리나(BBC는 이사가 14명이고 NHK는 7∼10명이다). 대의기관인 국회와 달리 대표성도 없는 단체나 학회가 추천권을 갖는 게 맞는가. 국민 모두를 대변해야 할 공영방송인데 특정 진영이 과잉 대표되는 건 괜찮나. 법이 통과되면 추천권을 행사하게 될 단체들이 입법을 방해할 경우 “강성 노조의 참맛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달 중 처리를 압박하고 있다. 좌파 진영의 ‘반지성적’인 언론 장악 꼼수다.
반론보도
5월 19일자 “[오늘과내일] 민주당의 ‘KBS·MBC 영구장악법’ 꼼수” 관련, 본보는 공영방송 운영위원 17명 추천권을 대부분 언론노조가 갖도록 설계됐다는 취지로 논평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는 “공영방송 운영위원 추천권도, 공영방송 장악을 꾀한 바도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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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