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아주 크게 혼냈다고 생각해라.” 10년 전 내가 큰 잘못을 했을 때 당시 편집장이 한 말이다. 그는 내 잘못을 듣고 잠깐 생각하다 조용히 한마디 한 뒤 다시는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 나의 편집장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친절했고 언제나 품위 있었고 자주 동자승처럼 웃었다. 어떤 선배는 이기심 때문에 팀을 난처하게 만들고 떠났다. 편집장은 그를 따로 불러 밥을 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면서. 유치한 허영의 라이프스타일 잡지업계 안에도 그런 인격자가 있었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이런 건 다 할 수 있어.” 내 직속 선배는 늘 일에 파묻힌 채 덤덤하게 말했다. 그 선배는 원고 집필과 화보 진행과 브랜드와의 협업 실무까지 하면서도 가장 마감이 빨랐다. 그 선배에게는 일처리의 세부사항 처리와 평정심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 선배는 중간 연차의 특성상 온갖 일을 하면서도 늘 친근하고 유쾌했다. 자기 일이 많다고 생색을 낸 적도 없었다. 그 와중에 선배의 인터뷰 원고가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마감하다 말고 그 선배의 원고를 몰래 찾아 읽곤 했다.
사실 내가 있던 그 잡지는 내내 업계의 뒤편에 있다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폐간했다. ‘젠틀’한 남자를 다룬다고 했지만 그 프로젝트 주변의 누구도 젠틀하지 않았다. 비정하고 얄팍했던 그 한철에 젠틀하고 우아했던 건 내 팀의 편집장과 선배들뿐이었다. 내 선배들이 우리 업계에서 최고로 유명한 분들은 아니다. 그러나 부풀려진 업계 스타들보다, 내 선배들처럼 묵묵히 내실을 기한 분들이 성실하게 일하고 후배들을 키웠다. 다른 업계도 비슷할 것 같다. 잡지 에디터 일은 업력과 직업 수명이 짧아 인력 이탈 비율이 높다. 나도 가끔 왜 이 일을 계속 하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이 일을 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 스승들께서 가르쳐주신 게 맞았음을 증명하고 싶다. 교양과 유머가 오래간다는 걸 알리고 싶다.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살아남아 젊은 분들께 내가 배운 좋은 걸 전하고 싶다. 이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일곱 번째 이유쯤 된다. 스승의 날 주간을 맞아 내 스승들을 떠올리며 적었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