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오늘과 내일/이철희]김정은과 푸틴의 ‘삽질 동맹’

입력 | 2022-04-14 03:00:00

1단계부터 밑천 드러낸 북-러 군사도발
韓日 핵무장·나토 팽창 부르는 ‘바보짓’



이철희 논설위원


올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비교해보면 그 궤적이 묘하게 일치한다. 러시아가 1월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는 동안 북한은 주로 단거리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2월 들어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간엔 러시아도 북한도 숨을 고르듯 멈췄고, 러시아가 2월 말 침공을 감행하자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연달아 쏘아 올리며 무력시위를 재개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침공 한 달 만인 지난달 25일 ‘1단계 목표 달성’을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북한도 ‘신형 ICBM 성공’을 선언한 뒤 3주 가까이 잠잠하다. 이제 러시아군은 병력을 보강 재정비하며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준비하고 있고, 북한은 풍계리 갱도를 복구하며 7차 핵실험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시간표를 맞춘 듯한 북-러의 군사 행로를 보면 양국이 군사계획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진행될 러시아의 총공세와 북한의 핵 도발을 지켜보면 그것이 북한의 기회주의적 숟가락 얹기인지, 아니면 사전 조율 아래 이뤄지는 공동 작전인지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강도 도발과 협상 전환, 장기 교착으로 이어진 북한의 지난 5년 대외 행보에서 김정은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중국 러시아와의 유대관계 복원이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주최하는 국제행사 때마다 대형 도발로 중국을 화나게 했던 ‘사고뭉치’ 김정은은 남북, 북-미 회담 전후로 늘 시진핑을 찾으며 공을 들였다.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은 북-미 하노이 결렬 뒤에야 열렸지만 이후 러시아는 대북제재 완화를 앞장서 주창하는 후견인이 됐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변부로 밀려난 러시아와 북한은 현 국제질서의 변경을 위한 모험주의적 공생(共生)을 꾀하고 있다. 특히 거악(巨惡) 러시아에 묻어가는 소악(小惡) 북한의 날쌘 행보가 두드러진다. 북한은 러시아 침공 초기 유엔총회의 규탄 결의안 표결에 중국이 기권했는데도 반대표를 던졌다.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청에 중국은 거절했지만 북한은 수락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러의 도발은 이미 1단계부터 그 밑천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점령과 젤렌스키 정권 교체가 어려워지자 당초 목표를 수정해야 했고, 북한도 신형 ICBM의 실패를 덮기 위해 과거 영상을 짜깁기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북-러 도발이 부른 역풍은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은 핀란드 스웨덴 같은 중립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편입을 부추기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그간 나토 가입에 부정적이던 국민 여론이 급변하면서 정부 차원의 공식 절차에 들어갔고 나토도 신속 처리를 약속했다. 북한이 ICBM에 이어 핵 도발까지 감행하면 한국 일본의 전술핵 배치 등 핵무장론에 불길을 댕길 것이다. 그러면 중국도 북한과의 손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푸틴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10년 전쟁은 제국의 몰락과 미소 양극체제의 붕괴를 재촉했고,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20년 전쟁은 유일 초강대국 지위의 쇠퇴를 불렀다. 미국이 한사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하고, 중국이 멀찌감치 러시아 뒤편에서 지켜보는 이유다. 호기롭게 시작한 북-러의 삽질이 제 무덤 파기로 판명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