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광고 로드중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이 탐탁지 않은 상황에 익숙해지곤 있었지만, 작년에 ‘서울아트시네마’가 문을 닫는다는 안내가 붙어 있는 걸 보았을 때 느꼈던 슬픔은 가혹하기까지 했다. 과장이 아니다. 2019년 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탔을 때처럼 누군가가 우리의 신앙을 의심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처음 서울에 온 후로 서울아트시네마는 나에게 교회나 절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종로의 낙원상가 꼭대기 층에 있었을 때부터 말이다. 무척 습했던 여름날, 친구가 나를 처음으로 그곳에 데려갔다. 우리는 대만 감독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봤고 그날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나에게 최고의 안식처였다. 인근의 영화관 건물로 옮겼을 때 나는 충견처럼 꼬리를 흔들며 쫓아갔다. 어찌나 좋은 선택이었는지. ‘좋은 놈, 나쁜 놈, 못생긴 놈’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를 피우는 그 장면을 봤고 ‘좋은 친구들’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애꿎은 공중전화를 부수는 장면을 영화관의 거대한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곳의 프로그래머들 덕분에 이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들도 처음 보았다. 또, 1960년대 악령에 씐 수녀를 모티브로 한 영화 ‘천사들의 수녀 요안나’ 같은 영화를 보고 설명을 살펴보며 ‘넌스플로이테이션(nunsploitation)’이라는 하위 장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영화관은 대부분 복합 쇼핑몰 안에 있는 멀티플렉스로, 영화만 조용히 볼 수 있는 곳들은 손에 꼽는다. 그런 환경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나에게 완벽한 피난처였다. 어떤 영화는 감상 후에 어떤 고요함을 요구한다. 설교를 들은 후 미사에서 나오며 말씀을 되새기는 신앙인처럼, 단 몇 분이더라도 영화에 대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고요함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가톨릭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교회 벤치라면 진저리가 나긴 하지만 그때 배웠던 의식 같은 것은 나에게 버릇처럼 남아 있다. 영화관에 가는 것이 바로 나에겐 그런 의식이다. 극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에는 설렘이 치솟고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긴장감을 나눈다. 이윽고 화면의 이미지가 거는 최면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가 두 시간 남짓의 상영시간이 끝난 뒤 불이 켜지면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의식이다.
광고 로드중
너무나 다행히도, 서울아트시네마가 돌아온다고 한다. 영화배우 유지태가 좌석을 후원했다고 한다. 정동길로 옮긴다는데, 영화를 보고 근처를 걸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의 첫 프로그램은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회고전이다. 나는 곧바로 ‘천국의 그림자’를 예매했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어쩌면 아직 신이 있다고 믿게 될지도 모르겠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