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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지웠다”…10년 농사 새로 시작하는 김효주[김종석의 TNT타임]

입력 | 2022-02-05 09:30:00

8일 제주에서 실전 동계훈련
10대 천재 골퍼에서 간판스타로 성장
3월, 싱가포르 첫 대회 타이틀 방어 겨냥
K골프 간판스타로 롱런 다짐




한국 여자골프의 간판스타 김효주는 고교 2학년 때인 2012년 4월 KLPGA투어 대회에서 처음 우승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는 2022시즌을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요넥스 제공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루하루 사는 것은 모두 기쁨일 뿐이야(봄여름가을겨울,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김효주(27·롯데)는 10년 전 이맘때 꿈 많은 17세 고교생이었다. 골프 기대주로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던 그는 대원외고 2학년에 다니던 2012년 4월 아마추어 초청선수로 출전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롯데마트오픈에서 덜컥 정상에 올랐다. 그것도 나흘 연속 선두를 질주한 끝에 9타차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완성해 챔피언만이 오를 수 있는 꽃마차에 몸을 실었다. 김효주 골프 인생의 꽃길이 열렸다.
제주는 약속의 땅
‘그린의 천재 소녀’로 주목받은 뒤 강산이 한 번 변할 동안 한국 골프의 간판스타로 이름을 날린 김효주는 초심을 떠올리며 본격적으로 2022시즌 대비에 들어갔다. 8일부터는 제주로 이동해 실전 라운드 위주로 동계훈련에 나선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자신을 지도한 한연희 전 대표팀 감독, 절친한 선후배들과 호흡을 맞춘다.

김효주는 “지난 연말까지는 지인들도 만나면서 휴식시간을 보냈다”며 “새해 들어 트레이닝센터에서 무게운동을 포함한 PT(퍼스널 트레이닝)에 집중하며 실내연습장에서 스윙감을 찾기 위한 가벼운 연습을 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으로 매일 1시간 30분씩 근력을 키운 그는 2월 말까지 제주의 골프장을 돌며 연습라운드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김효주는 19세이던 2014년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 우승을 통해 미국LPGA투어에 직행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친 한연희 전 대표팀 감독과 카메라 앞에 선 김효주. 동아일보 DB

김효주는 동계훈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겨울에 흘린 땀방울이 한해 성적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얘기. 제주는 과거 중고생 시절 국가대표로 자주 찾던 곳. 힘들 때도 많았지만 우승의 기분 좋은 추억도 쏟아지는 장소다. 주니어 시절을 떠올리며 훈련에 몰두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김효주는 올 들어 요넥스 골프와 후원 계약을 3년 연장했다. 2014년부터 요넥스 드라이버, 우드, 유틸리티, 아이언을 사용한 그는 새 클럽 테스트를 마친 뒤 “내가 가진 힘에 비해 비거리가 많이 나가게 설계가 된 것 같다. 관용성도 뛰어나다”며 평가했다. 요넥스 골프 관계자는 “제주에서 3월 출시 예정인 EZONE GT3 드라이버의 3가지 제품을 번갈아 쳐본 뒤 김효주 프로에게 맞는 최적의 클럽을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외 오가며 우승 트로피 사냥

김효주는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새해 첫 출격할 계획이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5년 3개월 만에 LPGA 대회 우승을 차지한 기분 좋은 기억을 살려 타이틀 방어를 노린다.

김효주 역대 KLPGA투어 시즌별 성적

2014년 비회원 신분으로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LPGA투어에 직행한 김효주는 LPGA투어에서 통산 4승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KLPGA투어에 전념하며 2020년 국내 상금왕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KLPGA투어 4개 대회에서 2차례 우승을 포함해 3차례 톱10에 드는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KLPGA투어에서 14승(아마추어 1승 포함)을 거두며 통산 상금만도 32억8000만 원에 이른다.


고교 2학년이던 2012년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롯데마트오픈에서 우승한 앳된 표정의 김효주. 동아일보 DB

김효주는 2012년 KLPGA투어 첫 우승을 계기로 그 해 10월 프로에 전향했다. 올해는 프로 10년차가 되는 시즌이다. 지난 10년 동안 최고의 순간을 3가지 꼽아달라는 주문에 그는 프로 첫 우승을 신고한 2012년 롯데마트오픈과 함께 2020년 롯데칸타타오픈을 꼽았다. 이 대회에서 오랜 무관의 설움을 끊고 3년 6개월 만의 KLPGA 우승을 하며 재도약의 터닝포인트가 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하나는 2021년 도쿄올림픽 출전이다. “프로의 입장에서 다시 달았던 태극기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었으며 그 어떤 대회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올림픽의 감동이 컸어요.”

몸은 단단, 마음엔 여유

2021년 8월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골프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효주. 지난 10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베스트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왼쪽) 웨이트트레이닝, 달리기, 식이요법 등으로 근력을 키워 비거리를 늘린 걸 재도약의 비결로 꼽는다. 경기 도중 물을 마시고 있는 김효주.(오른쪽) 동아일보DB

10년 넘게 김효주를 지켜 본 김재열 SBS 골프해설위원은 “골프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플레이 도중 얘기도 많이 하고 자주 웃는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가득 차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또 “내면적인 변화 뿐 아니라 외형적으로는 근육과 몸무게가 늘어 예전에 비해 파워가 생겼다. 비거리와 체력적인 자신감이 두드러진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더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 US여자오픈 등 메이저 대회 우승도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비거리 보다는 정확한 방향성으로 필드를 지배했던 김효주는 갈수록 길어지는 코스 전장과 러프, 까다로운 그린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막혀 정체기를 겪기도 했다. 2018, 2019년에는 정상 언저리만 맴돌 뿐 우승이 없었다. 너무 일찍 꽃을 피운 김효주 시대가 조기 마감되는 게 아닌가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김효주는 이를 악물었다. 2020년 초 50일간의 동계훈련을 통해 체중을 5kg 가까이 늘리며 강철 같은 근력도 키웠다. 몸의 중심을 이루는 코어 근력을 강화하려고 스쿼트, 데드 리프트, 벤치프레스 등을 밥 먹듯 했고, 하루 5km 달리기도 추가됐다. 근육을 키우려고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하루에 달걀f 8개, 닭 가슴살 600g을 먹기도 했다. 그 덕분에 240야드 정도였던 드라이버 비거리를 20야드 넘게 늘렸다. 예전 보다 짧은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게 돼 한결 편안한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이번 동계훈련에서도 벌크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김효주는 경기 도중 개성있는 세리머니로도 시선을 끈다. KLPGA 제공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숙됐다는 평가다. ‘행복한 골프’를 강조하는 김효주는 “지난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며 “동료,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의 본분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만족할 만한 성과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요. 과거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10년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와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이루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선수라면 우승을 해야 합니다. 해마다 우승할 수 있는 기량의 흐름을 유지하고 싶어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