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두암동 한 병원에서 고등학생이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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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걱정 때문에 아이의 백신 접종을 말리는 게 맞을까요.”
경기 성남시에서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학부모 A 씨는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최근 아들의 방을 정리하다 책상 달력에 적힌 메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이 A 씨에게 알리지 않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예약해 놓은 것. 백신 접종 당시 고열과 몸살에 시달렸던 A 씨는 심근염 등 백신 부작용 관련 보도를 접하고 아들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말고 좀 지켜보자”고 했다.
A 씨는 “아들에게 왜 말 없이 백신을 예약했느냐고 물어보니 ‘여자친구가 접종하겠다고 해서 따라서 예약했다’고 한다”며 “걱정이 앞서면서도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혹시 소외될까봐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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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도기간이 끝나 13일부터 방역패스가 의무 적용되는 시설 가운데는 카페와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영화관, 공연장, PC방 등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소아·청소년들은 내년 1월까지 이들 시설 출입이 가능하지만 2월부터는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 포함돼 접종을 완료하지 않으면 다중이용시설 출입이 제한된다.
지난달 말 백신을 접종한 이모 양(16)은 일주일 가까이 부모를 설득한 끝에 접종을 허락받았다. 이 양의 아버지는 “부작용 우려가 있다”며 백신 접종을 반대했다. 그때마다 이 양은 아버지에게 “반 친구들의 3분의 2가 접종을 받고 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다 백신을 맞았다”고 항변했다. 이 양은 “친구들과 예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다같이 카페에 가려면 백신을 꼭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교생 김모 양(17)은 최근 아버지 모르게 백신을 접종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백신의 효능을 믿지 않아 다른 가족의 접종도 만류했다고 한다. 김 양은 어머니를 설득해 아버지 몰래 백신을 접종해야 했다. 김 양은 “아버지가 많이 허탈해 했지만 카페나 학원에 갈 수 있다는 게 저에겐 큰 의미였다. 아버지는 끝까지 접종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거주불명자와 재외국민을 제외한 소아·청소년 약 277만 명 가운데 12일 기준 약 145만 명(52.3%)이 1차 접종을 완료했다. 이 중 103만 명(37.2%)는 2차 접종까지 완료했다. 충남 서산시의 한 고교 교사는 “반별로 접종 완료 학생이 늘고 있고 정부가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 적용을 발표하면서 1, 2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도 접종 희망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희망자 중 부모의 반대로 접종 예약을 하지 못한 학생들도 꽤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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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소아·청소년 백신 접종은 필요하지만 개인 선택에 맡겨야 한다”며 “학원 등 청소년 대상 시설에 방역패스가 적용되고, 학교 방문 접종을 시행하는 등 정부 정책에 따라 또래 사이에서 미접종자 낙인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