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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골드워터 규칙

입력 | 2021-10-25 03:00:0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측과 국민의힘 경선 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소시오패스(sociopath·반사회적 인격 장애)’ 발언을 놓고 격돌했다. 원 전 지사의 아내인 정신과 전문의 강윤형 씨가 유튜브에 출연해 이 후보에 대해 “자기편이 아니면 아무렇게 대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듯 답변하는 것은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고 말한 것이 불씨가 됐다.

▷23일 원 전 지사와 함께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 후보 측 현근택 변호사는 “강 씨 발언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과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에 맞서 원 전 지사는 “전문적 소견에 비춰 의견을 이야기한 것인데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두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감정이 격해지자 생방송 도중 자리를 뜨는 ‘방송사고’까지 터졌다.

▷방송 이후에도 장외 공방은 계속됐다. 여당 측은 “문제의 발언은 명백한 의사윤리 위반”이라고 집중 공세를 폈고, 원 전 지사는 “대통령 후보의 정신 건강은 명백한 ‘공적 영역’”이라고 받아쳤다. 일반인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별문제가 안 됐을 텐데 정신과 전문의의 의견이었다는 사실이 민감했던 모양이다.

▷1964년 미국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한 잡지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에 대해 “정신 상태가 대통령직 수행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답변한 것이 논란이 됐다. 골드워터는 잡지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당시 잡지사 편집장은 보상금으로 7만5000달러를 지불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정신의학회는 전문의가 직접 진단하지 않은 공인(公人)의 정신 상태에 대한 의견을 언급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했다. 전문의가 직접 진료를 했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골드워터 규칙’이다. 우리나라 정신의학회도 회원들에게 이 같은 골드워터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평범한 일반인이 아닌 공인이라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만 강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타인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에 대해선 건강 문제도 경고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무(duty to warn)’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의견 제시를 획일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심리학 등 전문가들도 2017년 콘퍼런스를 열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걸린 대통령직이라는 권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의 직업윤리와 엄중한 대통령직의 무게 사이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