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이후 일기 11편 소개 ‘조선 사람들…’ 펴낸 정우봉 교수
“지략 많은 금위중군 선봉은 하지 않고 좌천봉에 올랐다”
조선 영조 4년(1728년) 소론이 일으킨 ‘이인좌의 난’ 진압 과정에 참여한 훈련도감 소속 한 마병(馬兵·말을 타고 싸우는 하급 병사)이 작성한 한글 일기 ‘난리가’의 내용이다. 금위중군은 무신 박찬신(1679∼1755)을 가리킨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박찬신은 난을 진압한 공신으로 책봉돼 토지와 녹봉을 하사받고 승진의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이 일기에는 산봉우리로 도망간 비겁한 지휘관으로 기록돼 있는 것.
지난달 30일 출간된 ‘조선 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세창출판사)는 조선 중기 이후 하급 병사, 여성 등 여러 계층의 일기 11편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았다. 저자 정우봉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60·사진)는 양반 사대부와 같이 지배계층이 기록한 관찬사서와 달리 평민, 여성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일기를 통해 당대를 바라봤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결점을 숨기는 것이 예의이던 시절, 이를 드러낸 소중한 기록도 있다. 문신 남이웅(1575∼1648)의 아내 조애중(1574∼1645)이 쓴 ‘병자일기’에는 “매양 간담을 베어 내는 듯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하며, 생각하고 서러워하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으니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며 이리 헤아리고 저리 헤아린다”는 글이 남아 있다. 두 아들을 일찍 여읜 어머니의 마음을 절절하게 써내려간 것. 사실만 충실하게 기록했던 사대부 남성들의 한문 일기 전통과 달리 조 씨는 한글 일기에 내면을 오롯이 담아냈다.
문신 심노숭(1762∼1837)은 ‘자저실기’에서 “기생들과 노닐 때에 좁은 골목과 개구멍도 가리지 않아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다”며 자신의 지나친 정욕에 따른 괴로움을 고백한다. 정 교수는 “양반이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숨김없이 토로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공식 기록에서 누락됐던 계층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난 일기들은 한글 산문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 책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일기 자료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