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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희생 2983명 이름 읽으며 “극복해야 하지만 잊어선 안돼”

입력 | 2021-09-08 03:00:00

뉴욕 맨해튼 추모박물관 르포




추모공원 인공폭포 앞에서… 9·11테러 20주년을 닷새 앞둔 6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9·11추모공원 내 인공폭포 주변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북미 최대 규모의 인공폭포인 노스풀과 사우스풀은 각각 면적 4046㎡, 깊이 9.14m다. 폭포 가운데 물줄기는 ‘테러 희생자와 미국인의 눈물’을 상징한다. 연못 가장자리 검은 테두리에 새겨진 테러 희생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연못 너머로 오른편에 보이는 낮은 건물이 9·11추모박물관이다. 9·11테러 당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새로 건설된 프리덤타워(가운데)를 비롯한 초고층 빌딩들이 멀리 보인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9·11테러 20주년을 닷새 앞둔 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9·11추모박물관을 찾은 여러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9·11테러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쉽게 잊히지 않는 충격이라는 의미였다. 뉴욕에서는 9·11테러 희생자들의 유해에 대한 신원 확인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친구와 가족의 죽음을 겪고 나서 내게 중요한 일이 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20년 전 그 사건은 내 인생 경로를 바꿨다.”

6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9·11추모박물관. 이곳에서 만난 중년 남성 제프는 “9·11테러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9·11테러 당시 건물 등의 잔해와 파편, 희생자들의 유품을 전시해 놓은 지하층 파운데이션홀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제프는 “테러가 났을 때 버지니아주에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이후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찾게 됐다”면서 “곧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그게 돈을 버는 것보다 나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희생된 친구와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난 20년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20년 전 일 같지가 않다”면서 “9·11테러 직후 미국의 공동체 의식이 가장 강했던 것 같다. 그때의 모습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9·11추모박물관에서 만난 많은 미국인은 한목소리로 “20년이나 지난 테러가 마치 어제 벌어진 일 같다”고 했다. 시간이 오래 흘렀다고 해도 저절로 치유되거나 잊히지 않는 그런 충격이었다는 얘기였다. 6일은 미국의 노동절 연휴이자 9·11테러 20주년을 앞둔 마지막 휴일로 평소보다 많은 뉴요커들이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았다. 박물관 주변 광장에 있는 두 개의 대형 추모 연못에는 9·11테러 희생자 2983명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을 따라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세리 웨더왁스 씨는 “이런 느낌이 들 줄은 몰랐는데 테러가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다”고 했다. 9·11테러로 당시 40대이던 사촌과 친구들을 잃은 그는 9·11은 ‘악(evil)’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웨더왁스 씨는 “테러로 인해 엄마 배 속에 있던 아기를 비롯해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됐다”면서 “극복해야 하는 일이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발생한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자살폭탄 테러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테러 위험에 다시 노출돼 있다. 대혼돈 속에 있다”며 걱정했다.

추모의 연못 주변에서 만난 중년 여성은 “뉴욕에서 오래 살아온 뉴요커로서 9·11 20주년이 된다니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9·11테러 당시 맨해튼 바로 옆 동네인 브루클린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사건 직후 다른 사람들한테서 전해 듣긴 했지만 그저 빌딩에 불이 난 정도로만 알았다”며 “집에 와서 TV로 뉴스를 보고 나서야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 여성은 “9·11테러는 단지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를 모두 바꾼 사건”이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 돕고 합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남편이 소방관이었던 조앤이라는 여성은 “20년은 긴 시간이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9·11테러로 인해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마치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면서 “이 사건은 전 세계인의 삶의 방식을 바꿨다”고 말했다.

뉴욕 시민들의 거대한 추모 공간인 9·11추모광장은 2011년에, 추모박물관은 2014년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은 당시 9·11테러로 무너졌던 세계무역센터(WTC) 건물 잔해와 구조물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전시물 대부분을 지하에 배치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