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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재이첩前 이성윤 70분 조사”… 진술조서 작성 안해 논란

입력 | 2021-03-17 03:00:00

‘김학의 사건’ 관련 7일 대면조사
金처장 “李지검장이 면담 신청”… 녹화 않고 간단한 보고서만 작성
檢 안팎 “직접 수사 여부 결정전 핵심 피의자 만난 건 부적절”
李, 공수처에 전달한 의견서 통해 “檢수사와 다른 품격 보여 달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오른쪽)이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 처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과 관련해 고발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이달 초 면담 조사했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대한 수사를 무마시켰다는 혐의로 고발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7일 대면 조사한 사실이 16일 뒤늦게 밝혀졌다.

검찰로부터 이 지검장 등에 대한 사건을 이첩받은 뒤 직접 수사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공수처의 수장인 김진욱 공수처장과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피의자 신분인 이 지검장을 직접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약 70분 동안 피의자를 만나고도 공수처는 이를 진술조서에 기재하지 않고 간략한 보고서만 작성해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

○ ‘검찰 조사 거부’ 이성윤, 공수처 조사 자청

김 처장은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이 지검장을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을 이첩받은 직후에 만난 사실이 있느냐’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의 질문에 “변호인의 면담 신청에 따라 당사자(이 지검장)를 만났다”고 답했다. 김 처장은 “여 차장과 함께 이 지검장과 변호인을 공수처 건물 3층에서 1시간 가까이 만났다. 변호인이 여러 차례 면담 요청을 했다”면서 “면담 신청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사안이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 2층에는 처장실과 차장실이 있고, 3층에는 영상녹화 조사실이 있다. 김 처장과 이 지검장의 만남은 일요일인 7일 있었다고 한다.

김 처장은 “면담 겸 기초 조사였다”면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했고 본인 서명을 받은 뒤 수사 보고도 남겼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은 공수처가 전속적인 관할권을 갖기 때문에 검찰에 이첩해선 안 된다는 게 (이 지검장 측의) 핵심 (이야기)이었다”고도 했다. 이 지검장의 변호인은 공수처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검찰 수사와는 달리 공수처의 수사는 절제와 품격을 보여 달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 지검장이 검찰 수사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을 만나고 5일 뒤인 12일 이 지검장 등에 대한 사건을 검찰로 재이첩했다. 당시 김 처장은 수원지검에 공문을 보내 “공수처가 관련자들의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수사를 마친 뒤 사건을 송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과의 면담 날짜 및 참석자가 적힌 보고서, 이 지검장 변호인으로부터 받은 의견서도 함께 검찰에 보냈다고 한다.

○ 영상녹화 안 하고, 진술조서 미기재 논란

공수처에는 검사 신분이 김 처장과 여 차장 등 2명뿐이다. 나머지 검사들은 채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공수처장은 이 지검장이 고발된 사건을 직접 수사할지, 검찰이나 경찰 등으로 이첩할지를 결정하기도 전에 이 지검장을 만났다. 김 처장이 수사를 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 피의자인 이 지검장을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검사들은 비판하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주요 피의자를 불러 조사한 것은 사실상 공수처가 수사를 개시했다는 것”이라며 “특정 피의자는 공수처에서 조사하고, 나머지 피의자는 검찰에서 조사한 뒤 사건을 보내라는 것은 공수처가 자기 입맛에 따라 ‘선택적 수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을 70분 동안 만났지만 이를 영상녹화하지 않고 진술조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김 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공수처에서의 조사는 개방형 조사실에서 모든 과정을 영상녹화 방식으로 하게 되므로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인권 보호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변했다. 한 검찰 간부는 “김 처장과 이 지검장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가 없다”며 “이 지검장이 공수처의 이첩 결정에 관여한 것인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지검장이 공수처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수원지검 수사팀의 출석 요구를 거부할 명분을 공수처가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지검장은 16일 “공수처의 수사 등 절차 진행에 대해 답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없음을 양해 바란다”는 입장문을 밝혔다.

법무부 측은 대검찰청과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을 수사 중인 수사팀 등을 상대로 “공수처장과 이 지검장의 면담 사실이 야당에 어떻게 알려진 것이냐”며 항의해 감찰에 착수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도예 yea@donga.com·황성호·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