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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금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2019년 3월 19일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이규원 검사는 대검 기획조정부 A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단 회의에서 김 전 차관 출금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대검의 의견을 달라”며 이 같이 요구했다.
이튿날 오후 1시 경 대검이 의견을 보내오지 않자 “금일 중 조치가 가능하도록 신속히 해 달라”며 독촉했다. 하지만 A 검사가 약 1시간 뒤 김 전 차관은 피의자가 아닌 무혐의 처분이 있고, 조사단의 상위 기관인 과거사위원회 권고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출금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 검사는 같은 날 오후 5시경 “저희 팀은 적법절차 준수 등 감안해 의견이 없는 걸로 정리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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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법” 언급 사흘 뒤 가짜 서류로 출금 요청
이 검사가 의견을 번복한 것은 A 연구관이 보낸 ‘고려사항’이라는 메모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A 연구관은 김 전 차관 사건은 2013년과 2015년 무혐의 처분이 있었고, 조사단 진상조사 결과는 과거사위원회에 보고 되지 않았으며, 고(故) 장자연 씨 사건처럼 조사단의 재수사 권고가 일부라도 있지 않았다는 점을 메모에 적시했다. 피의자 신분이 아닌 김 전 차관을 출금하게 될 경우 위법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검사는 2019년 3월 23일 오전 0시 8분과 오전 3시 8분 총 두 차례에 걸쳐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긴급 출금 요청서를 보냈다. 첫 번째 요청서엔 무혐의 처분이 난 서울중앙지검의 사건번호를 기재했고, 두 번째엔 존재하지 않는 서울동부지검의 내사 사건 번호를 썼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장만이 3년 이상 징역형이나 금고형이 가능한 피의자에 대해서만 긴급 출금을 요청할 수 있는데, 서울동부지검장 직인 자리엔 직인 대신 ‘代 이규원’이라고 서명했다.
이 검사는 출금요청을 할 때 외부 인사와 술을 마시다가 조사단이 위치한 서울동부지검으로 이동해 업무처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사정을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이 검사가 한밤에 검찰청사로 와서 요청서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입장을 갑자기 바꾼 배경을 알기 위해선 당일 누구 지시를 받았는지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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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검찰 내부에선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과 이 검사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이 비서관과 이 검사는 사법연수원 36기동기다. 연수원 수료 뒤 2년 동안 같은 법무법인에서 활동했다. 해당 법무법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한 변호사 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 비서관이 김 전 차관 사건을 언급한 일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월 18일 “검찰과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김 전 차관의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나흘 전인 3월 14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별장 성접대 의혹) 영상에서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며 검찰의 김 전 차관 불기소 처분을 비판했다. 청와대에 근무한 윤규근 총경이 해당 기사를 이 비서관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하자 이 비서관은 “더 세게 했었어야 하는데”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한편 가짜 사건번호와 수사기관의 장을 승인이 없는 이 검사의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 요청서를 법무부가 사후 승인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용근 법무부 출입국정책단장이 승인요청서 결제에 난색을 표하면서 결제를 하지 않자 김 단장을 건너뛰고 출입국본부의 상급자인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이 결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출입국시사과의 A계장은 3월 20일 김 전 차관에 대한 출입국 기록을 조회하고 이를 정보보고 형태로 두 차례에 걸쳐 차 본부장에게까지 보고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긴급 출금뿐 아니라 김 전 차관 사건을 증폭하는데 ‘이광철-이규원’ 라인이 작동했을 여러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황성호기자 hsh0330@donga.com
고도예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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