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판으로 리메이크되는 ‘종이의 집’. 넷플릭스 제공
이호재 문화부 기자
최근 넷플릭스가 잇달아 화제작을 제작하기로 확정하자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같이 평가했다. 화이트 스페이스는 기존에는 다루지 않았던 장르와 주제로 그동안 만들지 않았던 작품을 제작하는 넷플릭스의 현지화 전략이다. 지난달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한국에 별도의 콘텐츠 법인을 설립한 넷플릭스가 영향력을 높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제작사와 방송사가 하지 못했던 일을 넷플릭스가 벌이려고 한다”는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의 분석처럼 한국 콘텐츠 업계에 커다란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행보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막장 드라마’의 수출이다. 재벌 2세, 출생 비밀, 김치 싸대기 등 한국형 막장 코드를 섞은 드라마 ‘위기의 여자’를 제작한다고 밝힌 것이다. 막장 드라마가 그동안 한국에서 사랑받아 왔으나 해외 진출이 된 적은 드물었던 만큼 드라마 업계에서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계자는 “아직 대본이 완성되지 않을 정도로 초기 단계지만 벌써부터 방송계가 바싹 긴장하고 있다. 한국형 막장 드라마가 세계에 통할지 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콘텐츠 업계에선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 못지않게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8000억 원을 투자하는 자본력으로 한국 시장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초반 성장세만 보고 넷플릭스의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다. 코로나19가 끝난 뒤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한 영화계 관계자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가 제작을 확정한 작품들을 보면 “그동안 한국 콘텐츠 업계는 왜 시도를 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이들 작품의 작가와 감독이 모두 방송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 넷플릭스 성공의 신호탄인 ‘킹덤’ 시리즈는 김은희 작가가 오래전부터 구상했으나 “사극 좀비물은 낯설다”는 부정적 시선 때문에 투자자를 찾지 못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 콘텐츠 업계가 하지 않았으나, 넷플릭스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눈여겨볼 때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