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고 권위 전미도서상 한국계 첫 수상… ‘신뢰연습’ 국내 출간한 수전 최 연극학교 배경 서사의 신뢰 다뤄… 반전 거듭하며 강한 흡인력 보여 하성란-이태준 작품 즐겨 읽어 “할아버지 최재서 다룬 소설 계획”
수전 최는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삶이 늘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경계인적 정체성은) 사물을 보는 시각, 집필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Heather Weston
예술고등학교 연극과 학생 두 명이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이 친구들과 카리스마 있는 연기 교사인 킹슬리 선생에게 알려진다. 선생이 두 사람의 사랑에 개입한 후 충격적인 일들이 휘몰아치듯 벌어진다. 반전을 거듭하는 비정형적 이야기, 인물들 간의 진실 게임뿐만 아니라 화자와 독자 간 신뢰 문제까지 제기하는 이 작품은 눈을 떼기 힘든 흡인력만큼이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뻔하게 들리지 않길 바라지만 이 말은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생충’ 같은 영화를 만드는 나라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을 준비는 그 이상이 돼 있다고 본다. 작품이 다루는 ‘서사의 탐구’를 한국 독자들이라면 그리 놀랍게 여기지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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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학교 내에서 위계, 권위를 악용한 성적 합의 문제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최 씨는 “소설 대부분은 2017년 말 미투 운동 발생 전에 이미 탈고한 상태였지만 그런 일이 이전부터 있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며 “오랫동안 학교 내에서의 성적 불법 행위에 대한 뉴스를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고 교사와 학생 간 불균형 등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소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서사 권력과 화자의 진실성 문제로 나아간다. 1인칭, 3인칭이 한 화자에 의해 동시에 기술되는 실험도 펼쳐진다. 그는 “내게 소설의 큰 주제는 항상 등장인물과 그들의 욕망에서 딸려 나오는 것”이라며 “처음에는 단순히 연극학교와 학생들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그들의 문제가 ‘동의’와 ‘서사의 주체(narrative control)’ 문제인 것이 곧 드러났다”고 말했다. ‘무엇(누구)을 믿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독서 후의 강렬한 의문은 역설적으로 작가가 얼마나 이 서사를 장악했는지 반증해준다.
그는 한국 영화와 소설의 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내 책꽂이에 있는 책 중 몇 권을 소개하자면 ‘이별의 말들, 한국여성 작가 단편소설’ 같은 문학선집이 여러 권이다. 하성란 작가의 단편집 ‘곰팡이꽃’, 이태준의 단편선집 ‘먼지 외 다른 이야기들’도 즐겨 읽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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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와 코넬대 대학원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문학평론가 최재서(1908∼1964)의 손녀이자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최창 교수의 딸이다. 6·25전쟁 참전 후 미국으로 망명한 아버지의 삶을 그린 ‘외국인 학생’으로 데뷔한 만큼, 한국적 뿌리와 한국계라는 정체성은 작가로서의 출발뿐만 아니라 작품 세계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험에 늘 끌린다. 미국에서 우리 위치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인종 문제가 심각한 이 나라에서 우리가 어느 위치쯤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쓰며 산다. 권력을 잡거나 백인 엘리트 위주의 최고 교육기관에 입학도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질문은 그대로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가 맞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혹은 아닌지부터 말이다.”
그는 친일 논란이 있는 할아버지인 최재서에 관한 소설을 집필할 계획임을 몇 차례 밝히기도 했다. 그 계획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다룰지 알아내는 것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첫 장편을 쓸 때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6·25전쟁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지만 결국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전쟁 직전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일제 강점기는 어땠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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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