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근 대신증권 장기전략리서치부수석연구위원
장기 고성장 종목에 대한 투자를 고민한다면 이제는 ‘무엇이 가치 측정을 어렵게 하는가’라는 답, 즉 본질을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정량적 방법론에 앞서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투자 철학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난 10년간 글로벌 증시를 이끈 힘은 기술기업의 혁신이었다. 110년 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는 이제 일상이 됐다. 피아 구분도 무의미하다. “우리가 페이스북을 없앨 존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할 것이다.” 경쟁사 직원이 아닌 페이스북 직원들을 위한 핸드북에 쓰인 글이다. 스스로를 혁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무겁고 거대한 유형자산보다 가볍고 유연하지만 모방하기 힘든 무형자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사업전략이다. 예를 들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활동, 기업문화, 디지털 역량 등 재무제표에 없는 조직적 자산의 역할이 컸다. 영국은행의 통화정책위원 조너선 해스컬은 저서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서 이를 ‘무형경제의 부상’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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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지난 10년간 코스피는 무형경제에 올라타지 못한 채 글로벌 증시와 탈동조화가 심화돼 이른바 ‘박스피’라는 오명도 얻었다. 유형경제의 함정에 갇힌 것이다. 다만, 최근 반전의 기류도 감지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이른바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 기업군이 주목받고 있다. 관련 기업의 상장도 이어지고 있다. 장기투자를 위해 이러한 흐름이 한국 증시 생태계를 무형경제 패러다임으로 이동시키는지를 잘 따져볼 시점이다.
홍재근 대신증권 장기전략리서치부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