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조선 여성노비-기생도 재산-폭력 소송 제기했다

입력 | 2020-11-16 01:00:00

김지수 美 조지워싱턴대 교수, 당시 여성이 쓴 所志 600여건 분석
“법적 권리 있었지만 차별도 엄연”




경오년 2월 여종 말금은 수령에게 죽은 남편의 사촌인 승운을 고발하는 소지(所志)를 제출했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온 남편의 땅을 승운이 땅문서를 조작해 빼앗으려 한다는 것. 말금은 소지에서 “이 과부를 도우셔서 제 땅을 빼앗으려는 승운의 못된 계략을 멈춰 달라”고 호소한다. 수령은 판결에서 “원고의 사실이 확인되면 승운을 체포하라”고 명했고, 승운의 문서 조작이 확인돼 말금은 땅을 되찾았다. 소지에서 언급한 경오년은 1750년, 1810년, 1870년 중 한 해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는 신분 세습과 남녀 차별이 엄격한 사회였지만,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소송 제도가 있었다. 모든 신분의 여성이 법적 주체가 돼 관아에 소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지수 미국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44)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소지 600여 건을 분석해 학술서 ‘정의의 감정들’(너머북스·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김 교수는 양반, 평민, 노비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작성한 소지를 분석했다. 지방의 도와 군현에서 제기된 소지 155건 중 한글로 쓴 것도 30건이 남아있다. 남성 중심의 한자 문화에서 벗어나 있던 여성들이 한글로 소지를 쓴 것이다. 양반 여성은 입양으로 인한 장자의 권리, 재산 분배, 노비 소유 등에 대해 소송을 주로 제기했고, 하층민 여성들은 세금, 토지 분쟁, 채무, 구타 등에 대한 것이 많았다.

양반인 부인 임씨는 1652년 전라도 관찰사에게 가문의 계승과 재산 문제에 대해 소지를 제출했다. 죽은 남편이 노비 출신 등의 첩에게서 난 딸이 둘 있지만, 나중에 대를 잇기 위해 들인 양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충청도 공주의 평민 정조이는 전라도 금산의 수령에게 소지를 제출해 시아버지 묘지 앞에 조상의 시신을 몰래 묻은 이순봉이라는 자를 고소한다. 당시 묘지 자리를 빼앗는 것은 토지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송할 권리는 기생에게도 있었다. 1705년 제주도의 기생 곤생은 바다를 건너 전라도 관아까지 나와 억울하게 죽은 세 딸에 대해 호소했다. 제주 수령 이희태가 개인적 원한으로 자신의 딸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고문을 하다 딸들이 모두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안은 숙종에게까지 보고됐고, 숙종은 이희태를 유배 보냈다.

누구나 소송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 차별은 존재했다. 소송 제기자가 여성이라서 무시당하고, 한자가 아닌 한글로 소지를 작성해서 무시당한 경우도 많았다. 김 교수는 “현대적인 ‘평등’의 관념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신분 경계 내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박탈당한 백성들에게 최소한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동등한 기회는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