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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 기회는 한 번뿐[여의도 25시/한상준]

입력 | 2020-11-03 03:00:00


2019년 1월 8일 청와대 인사 당시 만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노영민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은 2기 청와대를 이끌어 온 노 실장의 후임 인선을 준비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상준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낸 적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1기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답변은 한결 같다. “6월의 그 금요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2017년 6월 16일이다. 그날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낙마 인사다.

당시 안 후보자는 허위 혼인신고 논란 등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되자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후보자 자택으로 보내 설득에 나섰다. 결국 안 후보자는 금요일 오후 8시에 사퇴문을 발표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는 점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문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시 청와대 핵심 참모는 “문 대통령도 안 후보자를 끝까지 고수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다만 시간을 좀 더 가져보자는 생각이 있었지만, 임 전 실장은 더 끌었다가는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크게 화를 냈지만 임 전 실장의 설명을 들은 문 대통령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포함한 참모들을 관저로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도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참모를 중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일이다.

2015년 5월, 비문(비문재인) 진영의 흔들기에 격분한 문 대통령은 ‘당원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비문 진영을 성토하는 글을 발표하려 했다. 그러나 다른 지도부들은 “갈등이 더 격화될 수 있다”며 이를 만류하기 위해 문 대표와의 면담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당 대표실에도, 국회 의원회관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문 대통령을 결국 찾아낸 건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김 장관이었다. 국회 이발소까지 쫓아간 김 장관은 “발표만은 절대 안 된다”고 극구 말렸고 결국 문 대통령은 뜻을 접었다. 이른바 ‘부치지 못한 편지’ 파동이다.

두 사례를 다시 꺼내든 건 현재 청와대의 상황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중진 의원의 말이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의원들과 소통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밥도 먹고 통화도 한다. 문제는 그 의견이 대통령에게 전달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노 실장이 문 대통령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뜻과 반하는 의견이라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도 비슷하다. 한 참모는 “매일 오전 티타임 회의에서도 발언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노 실장도 말을 아끼는 편”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정책 혼란과 계속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여당 의원들은 “더는 방치할 수준이 아니다”는 기류가 강하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의원들은 표심을 읽기 위해 레이더를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다는 점이다. 자연히 여당 내에서도 “여론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온다. 청와대 개편과 개각을 앞두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참모들이 포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게다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한 친문 인사는 “2017년 대선 전부터 대통령 임기 5년을 3기로 구분 짓고 준비해 왔다. 지금까지 그 기준에 따라 참모진 개편이 이뤄졌다”고 했다. 1기는 임 전 실장이 맡았고, 2019년 2기의 시작은 노 실장이 열었다. 그리고 내년부터 2022년 5월 문 대통령 퇴임까지는 곧 임명될 3기 비서실장이 이끌게 된다.

임기 마무리를 준비하는 3기 참모진이지만 과제는 막중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후폭풍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벌어진 소득 격차, 미래 성장동력 준비, 사회 갈등 극복 등도 숙제다. 한 번뿐인 선수 교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