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동아일보에 SF소설 게재 ‘무진기행’ 작가 김승옥 필담 인터뷰 “동아일보 옛 건물서 집필 의뢰받아… 도망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 1990년생 기자가 2020년 사는 내용… 영상통화 -자율자동차 등장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옛 사옥(일민미술관) 앞에 선 김승옥 작가. 김 작가는 1970년 이곳에서 50년 뒤 동아일보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SF소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6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옛 사옥(현 일민미술관)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소설 ‘무진기행’(1964년) 등으로 1960년대 문단의 기린아로 떠오른 김 작가는 1970년 4월 창간 5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에 단편소설 ‘50년 후 디 파이 나인(D.π.9) 기자의 어느 날’을 실었다. 50년이 지나, 젊은 작가들은 이 소설을 오마주한 소설집 ‘SF 김승옥’(아르띠잔)을 펴냈다. 김 작가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며 현재 살고 있는 전남 순천에서 4시간 넘게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동아일보 옛 건물이 보고 싶다고 했다.
26일 김승옥 작가(오른쪽)와 1990년생 동아일보 기자가 필담을 나누고 있다. 아르띠잔 제공
당시 국내에 SF소설은 흔치 않았다. 한국 작가의 SF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던 탓에 그는 해외 SF소설과 각종 문헌을 뒤져가며 미래를 상상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 작가의 예측은 놀라울 정도다.
김승옥 작가가 쓴 SF소설 ‘50년 후 디 파이 나인 기자의 어느 날’의 상편이 실린 1970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15면.
소설에는 자율주행자동차도 나온다. 심지어 준의 자율주행차 이름은 ‘귀요미19’다. 현재 일부 국어사전에 ‘예쁘거나 애교가 있어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표제어로 올라있는 귀요미는 인터넷이 상용화된 2000년대 나타난 신조어다. ‘귀요미19’라는 명칭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김 작가는 “귀요미는 ‘귀염둥이’라는 뜻으로 지은 단어”라며 “당시 한국에서 출시되는 자동차도 영어 이름을 많이 썼는데, 한국어 이름을 지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김 작가에게 인터뷰는 그의 소설 ‘무진기행’ 속 안개 가득한 무진을 걷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2003년 갑작스레 뇌중풍(뇌졸중)을 겪은 뒤 자신의 의사를 말과 글로 표현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는 기자의 입을 보며 질문을 이해했고 메모지에 글을 써서 답했다. 이날 오후 느지막이 인터뷰를 끝낸 김 작가는 홀로 기차를 타고 자신만의 ‘무진’, 순천문학관으로 돌아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