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 ‘헤븐’ 발매한 김사월 부서질듯 여린 소녀 목소리로 여전히 세계와 자신 경멸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이달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나온 ‘담쟁이’를 통해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데뷔했다. 유어썸머 제공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의 음악에 장르명을 선물한다면 이쯤 되리라.
‘너의 침대에 저주를 보내서/세상 가장 불행한 사랑을/나누게 할 거야’(‘오늘 밤’) 같은 노랫말을 읊조려대는 김사월 3집 ‘헤븐’(14일 발매)을 듣다 보면 몇 번이고 마주친다. 섬뜩하고 아득한 심연, 침대 아래 가려둔 오래된 벽지 얼룩 같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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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의 허리를 만지네 (중략) 자 그러니까 당신은/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너무 역겨워’(‘스테이지’)
부서질 듯 여린 소녀의 목소리로 세계와 자신을 경멸하는 그의 노래는 3집에서도 여전하다. 단, 김사월의 새로운 청각적 방에 좀 더 유심히 발을 들여볼 만하다. 김사월 1, 2집에 김해원이 공동 프로듀서 겸 편곡자로 힘을 보탰다면 이번엔 독립선언이다. 김사월 자신이 프로듀스와 편곡, 음향 디자인 전반을 도맡았다.
“부모님 집에 살다 처음 독립한 이가 자신만의 공간을 맘껏 꾸미듯 즐겁고 좀 과감하게 소리를 디자인했다. 재밌었다.”
따라서 입체적으로 소리가 들고 나는 위치를 둘러봐야 재밌다. 마치 집들이라도 하듯이. 첫 곡 ‘일회용품’의 후반부에서 오른쪽 스피커를 가격하는 기타 사운드, 담백한 포크 발라드 ‘확률’을 뒤집는 보컬 딜레이(delay)의 유령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에 퍼붓는 강렬한 록 기타의 페인트칠은 거의 라디오헤드 초기 사운드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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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하프 소리가 상징하는 커튼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제치고 나타나 (곡 피날레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닫으며 사라진다.”(김사월)
앨범 제목 ‘헤븐’은 뒤틀린 반어. 반사판에 굴절돼 비친 김사월의 기괴한 사진이 음반 표지 이미지다. CD의 뒷면에 적은 ‘HEAVEN’의 ‘E’는 의도적으로 희미하다. 우리가 그리는 천국이란 어쩌면 그저 무너져가는 ‘haven(피난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질투, 관능, 저주의 진창에서도 결국 ‘나의 여생을 함께할 확률이 있는’(확률) 사람을 갈구하는 이는 ‘지옥으로 가버려’를 외치며 ‘사막’을 헤매던 2014년의 김사월에서 얼마나 멀리 왔을까.
“치정 포크? 하하하. 맘에 드는데요?”
김사월이 웃어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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